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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nam 5시간전

꽃 같은 인연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고향 선배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늘 전화 한번 해야지 하면서도 바쁜 일상에 밀려 통화를 못했다.. 그러나 가을이 다가오면서 텃밭에 손수 가꾼 채소가 제법 자라자, 그 채소 한 줌을 전하고 싶어졌다.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걸었고, 천만다행으로 연락이 닿았다. 어두워지는 저녁,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며 반가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시간이 흐르고 사방은 점차 어두워졌지만 그녀는 쉽게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낯선 길에 돌아섰다가 다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차가 들어오는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기다렸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더욱 간절히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의 차가 멈추는 모습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그녀의 손에는 노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가까이 오자 웃으며 내미는 꽃, 돼지감자 꽃이었다. 그녀가 집 화단에서 꺾어 물병에 담아 가져온 꽃다발은 환한 노란빛으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여전히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꽃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그 순간, 꽃 한 송이가 주는 따뜻함이 전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텃밭에서 정성껏 길러온 채소를 건넸다. 비록 작은 나눔이었지만, 고향의 정과 따뜻함을 담은 마음이었다. 그녀도, 나도 이 작은 선물이 주는 기쁨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가을 저녁, 채소와 꽃을 주고받으며 소박한 행복이 우리의 마음을 물들였다. 우리의 만남은 시간 속에서 간직한 그리움과 따뜻함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순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나에게 자기의 시집을 선물했다. 매일 저녁, 나는 그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한 편씩 읽었다. 그 시들을 통해 나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느껴갔다. 시 속에서 담겨 있는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소통 방식이 되었다.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그 교감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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