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감정의 샘물이 조용히 솟구치듯 올라왔다. 마치 오랫동안 참고 있던 말들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별일 아닌 장면에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이유 없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내 마음은 늘 고요한 줄만 알았는데, 그건 깊게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감정은 잠들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용암처럼 분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뜨거운 물결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 가을날, 차창 밖으로 단풍이 한창일 때였다. 햇살을 머금은 잎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바람 따라 살랑일 때, 그 화려한 풍경 앞에서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감동이 밀려왔다. 그 순간, 단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꼭 적어야겠다는 마음이 치솟았다. 마치 볼일을 급히 해결해야 할 때처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이 있었다. 나는 근처 골목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몇 줄의 시라도 써 내려가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 마음의 샘물이 그처럼 충만하게 차올라, 넘쳐흐르듯 글이 되어 나오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의 감각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단지 어느 날, 마음 한편이 가볍게 흔들리는 그 진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적기 시작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적다 보니, 말이 되지 않아 눌러뒀던 기억들과 감정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고, 내 안의 작은 속삭임들이 들려온다. 누군가를 위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게 하는 진솔한 고백은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글은 나에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자, 감정을 정리하는 도구이며, 존재의 숨을 쉬게 해주는 통로였다.
물론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이 언제나 아름답고 시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론 분노나 슬픔처럼 어둡고 무거운 감정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마저 솔직하게 마주하고 글로 적다 보면, 그 또한 나를 이루는 한 조각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전에는 꾹 참고 넘기기 바빴던 감정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글로 환원된다. 글로 표현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휘두르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글을 통해 내 마음의 모양을, 나도 몰랐던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는 감정이 복받치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을 감사히 여긴다. 글샘이 터진다는 것은 내 안에 아직도 살아 있는 감정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뜻이니까.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는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다시 희망을 품는 행위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한 문장을 마음에 담고, 언젠가 그 문장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이 나를 살리고,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빛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이 따뜻한 샘물을 기꺼이 길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