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수거 오거서(男兒須擧五車書)”라는 말이 있다. 옛 송나라 학자 주희가 한 말로, “사내라면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마음을 가꾸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책’이라는 매체는 어느새 종이에서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며 책장을 스치는 소리를 듣고, 책 냄새를 맡으며 느끼던 감각은 사라졌지만, 책이 주는 감동과 깨달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 형태는 달라졌어도, 문학은 여전히 삶을 움직이는 가장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나는 학부모님들을 교실로 모아 작은 설명회를 열곤 했다. 집에 있는 양질의 책들을 학급 도서로 도네이션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처음엔 다들 선뜻 응하지 못했다. 어렵게 마련한 책들을 응접실 서가에 정갈히 꽂아두고, 행여나 손때가 묻을까 조심스레 다루던 문화 속에서 살아온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합니다. 아이들의 손때가 책을 살립니다.” 그 말에 공감해 준 몇몇 학부모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이내 교실은 책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었고, 집으로 빌려가기도 했다. 책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시절의 교실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살아 숨 쉰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디지털 문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종이책이 아닌, 화면 속에서 문학을 읽고 쓰는 시대.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맛이 없다는 것이 어딘가 허전하고, 눈으로 읽는 글보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던 책이 그리웠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감동은 종이냐 스크린이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실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작년 가을, 브런치 작가로 추천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나는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점차 나의 삶을 조금씩 꺼내어 글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일상과 감정이 활자가 되어 화면 위에 떠오르고,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된다는 사실은 내 삶을 다시 숨 쉬게 만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의 샘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내 글을 수많은 이들과 나누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다시 따뜻한 마음을 되돌려 받았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디지털은 그런 길을 열어주었다. 젊은 날 교실 한편에 아이들과 함께 쌓아 올렸던 책더미를 떠올리며, 이제 나는 온라인 세계에 또 다른 책장을 펼쳐 간다. 종이책의 낭만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링크 하나로 오가는 디지털 글쓰기 속에는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는 소통의 기쁨이 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쓰고, 나누는 삶. 그 속에서 나의 글쓰기 영역과 삶의 깊이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문학은 변하지 않는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질은 그대로다. “남아수거 오거서”라는 말은 이제 남성에만 해당되는 교훈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향한 권유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삶의 독자가 되어야 하며, 때로는 삶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아침을 열어주고, 어둠 속을 비춰주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
이제 나의 작은 꿈은, 그동안 써온 글들을 한 권의 eBook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종이책을 넘는 감동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에게 링크 하나로 내 책을 전하고 싶다. 한글로만 머무르지 않고, 영어로도 번역하여 우리 이세 삼세는 물론, 미국 원어민 독자들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언어와 문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삶의 결을 따라 적어 내려간 이 글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떨림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금 나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