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의 사랑은 우는 아기를 달래는 자장가가 되고, 생채기 난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멜로디가 되며, 세대를 이어주는 불멸의 노래가 된다. 이 노래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음악이 아니다. 연어와 펠리컨, 고릴라와 황제펭귄, 그리고 가물치에 이르기까지, 동물 세계 곳곳에서 ‘모정(母情)’은 생명을 이어 주는 노래로 울려 퍼진다. 이들은 말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자식을 살리는 소리 없는 합창을 들려준다. 우리 역시 어머니의 품에서 처음 듣는 자장가로 삶을 배우고,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가슴에 안고 세상의 냉랭함을 견딘다. 이 수필에서는 ‘생명을 잇는 모정의 노래’가 무엇인지, 왜 그것이 생명의 근원인지를 동물과 인간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소절은 ‘연어의 노래’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암컷은 알을 낳고 나서 갓 부화한 새끼들이 움직일 줄 모르는 동안 한 자리를 지킨다. 이른 봄의 차가운 물결 속에서 새끼들이 어미의 살을 쪽쪽 빨아먹으며 자랄 때, 암컷 연어는 스스로의 고통을 노랫소리로 바꾼다. 연어의 가슴팍은 미동 하나 없이 새끼를 지키는 무대가 되고, 그 무대 뒤에서 비통함과 고통이 화음 없이 이어진다. 새끼들이 처음으로 강물을 헤엄치는 순간, 어미는 재가 되어 흩어지지만, 그 노래는 새끼들의 유전자가 되어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연어의 모정은 신체를 악보 삼아 새 생명을 위해 고통을 견디는 그 거룩한 찬가다.
두 번째 소절은 ‘펠리컨의 노래’다. 펠리컨 암컷이 병든 새끼에게 자신의 가슴살을 내어 주고, 심지어 핏줄을 터뜨려 피를 먹이는 모습은 고통의 절정이다. 이 극단의 희생은 서양 예술에서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붉은 피를 새끼의 입술에 붓는 장면은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던 어머니의 심장을 비추는 무지개의 선율처럼,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모정의 깊이를 들려준다. 펠리컨 어미의 노래는 피 묻은 절규가 아니라, 사랑으로 잉크를 찍은 귀한 악보다.
세 번째 소절은 ‘영장류 어미들의 무언의 연주’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 어미들은 절대 시선을 떼지 않고 새끼를 안는다. 새끼가 죽으면 시체가 썩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 그 집착은, 말로 전할 수 없는 연민의 교향곡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지닌 이들 어미의 마음속에는 ‘멜로디’ 대신 ‘진심’으로 짜인 화음이 흐른다. 그러므로 그 노래는 타이틀도 악보도 없다. 그저 새끼의 울음소리가 시작이면, 어미의 심장이 반주를 시작한다.
네 번째 소절은 ‘황제펭귄 암컷의 행군’이다. 알을 낳고 수컷에게 품는 임무를 맡긴 뒤, 암컷은 혹독한 남극 풍경 속으로 먹이를 구하러 떠난다. 100킬로미터가 넘는 빙원을 건너 바다에 이른 뒤에도, 먹이를 자신의 소낭에 가두어 소화 기능을 마비시키고서야 귀향길에 오른다. 그 과정은 일종의 전율을 동반한 서사시다. 세상의 끝에서조차 알 앞에 머문 모성의 선율은, 얼어붙은 땅 위에 고요히 울려 퍼지는 협주곡과 같다.
다섯 번째 소절은 ‘효자 물고기 가물치의 진혼곡’이다. 알을 낳은 뒤 실명한 어미 가물치 앞에선 부화한 새끼 수천 마리가 어미의 몸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먹이가 된다. 이 장엄한 희생극은 ‘가물치는 효자 물고기’라는 이름 아래, 자식이 먼저 목숨을 내어어미를 살리는 진혼곡이 되었다. 먹이보다 값진 것은, 희생이라는 가장 순수한 부채감이다. 새끼들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어미의 고통을 덜고 생명을 보존한다.
이처럼 동물 세계의 모정은 각양각색의 악기를 동원해 합창을 이룬다. 그 찬가는 결코 눈부신 멜로디가 아니다. 말없이 흘러나오는 무언의 노래이고, 몸의 언어로 연주되는 근원적 예술이다. 이 무대는 대중의 박수나 조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이라는 조용한 리듬 위에, 생명이 이어지는 놀라운 서사를 수놓는다.
인간 사회에서도 모정의 노래는 끊이지 않는다. 어릴 적 어머니가 부르던 자장가는 가장 먼저 듣는 생명의 노래였고, 그 멜로디는 평생 잊히지 않는 가락으로 가슴에 남는다.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은 그 노래가 내 삶 곳곳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길은 지친 어깨를 다독이는 반주였고, 따스한 말 한마디는 인생의 사소한 불협화음을 잔잔히 반주해 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모정은 때로 지나친 희생으로 자신을 잃게도 한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자녀만을 위한 삶을 선택할 때, 모정의 오케스트라는 결국 어머니 자신에게 고통의 선율을 남긴다. 연어 어미처럼 자신을 잃지 않는 법, 펠리컨 어미처럼 건강을 해치지 않는 희생, 펭귄 어미처럼 균형을 지키며 헌신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명을 잇는 모정의 노래’는 단순한 희생의 기록이 아니라, 사랑이 사랑을 낳고, 생명이 생명을 잇는 순환의 교향곡이다. 이 교향곡은 세상 어디서나 흘러나오며, 때로는 폭풍우처럼 격렬하게, 때로는 햇살처럼 부드럽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곡조 속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오늘도 어머니의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그 선율을 기억하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반주자가 되어 주자. 사랑의 가락을 건네어 주고, 삶의 불협화음을 달래 주며, 내일의 누군가가 또 다른 모정의 노래를 울릴 수 있도록. 그렇게 이어지는 생명, 그 합창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연주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