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한편에는 늘 쿰쿰한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댓돌 위에 쏟아지던 따스한 햇살과는 이질적으로, 집 안으로 스며들던 그 독특한 발효 향은 낯설면서도 강렬하게 어린 나의 감각을 파고들었다. 청국장,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손길 끝에서 피어나던 그 짙은 향기는 어린 나의 세계에 하나의 뚜렷한 표식처럼 각인되어, 훗날 희미해진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는 강력한 매개체가 되리라고는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낯선 듯 익숙한 향기는,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 흐릿한 풍경처럼, 어린 시절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며 잊을 수 없는 잔상으로 남아있다.
외할머니 댁은 시간마저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낡은 나무 마루의 삐걱거리는 소리, 마당 한편 솥단지에서 뭉근하게 익어가는 콩들의 숨결, 그리고 그윽하게 퍼져나가는 발효의 향기는 도시의 빠르고 건조한 공기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느린 호흡과 같은 것이었다. 쿵덕거리는 절구 소리는 마치 대지의 심장 박동처럼 고요한 마당에 울려 퍼졌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하얀 실을 뽑아내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가는 으깨진 콩들의 모습은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 끈적한 변화는 단순한 음식의 탄생을 넘어, 시간과 정성이 만들어내는 연금술과 같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어린 나의 코에는 그 향이 쉽사리 친숙해지지 않았다. 찌개가 끓기 시작하여 온 집 안을 휘감는 낯선 기운은 때로는 숨 막힐 듯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화려한 꽃향기나 달콤한 과일 향과는 너무나 다른, 깊고 어쩌면은 거친 그 향은 섬세한 어린 감각에게는 일종의 넘어야 할 산과 같은 도전이었다. “으, 냄새!” 칭얼거리는 나에게 어머니는 늘 같은 말씀을 되뇌셨다. “이 안에 삶의 깊은 맛이 숨어 있단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그 어린 날의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세상의 이치가 너무나 복잡하고 아득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스며들던 청국장의 향기는, 훗날 낯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작은 용기가 되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낯선 향이 식탁 위에 오르면 나의 숟가락은 묘한 이끌림에 멈출 줄 몰랐다. 쿰쿰함 속에 숨겨진 구수한 풍미, 뭉근하게 끓여진 두부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져 혀끝에 감도는 짭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은 낯선 첫인상과는 달리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어린 입맛을 사로잡았다. 겨울밤, 온돌방 아랫목에 둘러앉아 나누던 뜨거운 청국장찌개는 단순한 끼니를 넘어, 언 몸을 녹이고 가족 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낯선 향은 이제 따뜻한 밥상의 기억,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던 온기의 기억과 함께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문득 그 쿰쿰한 향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풍경, 외할머니의 따뜻한 미소, 그리고 어머니의 잔잔한 사랑이 그 향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가끔 스스로 청국장찌개를 끓일 때면, 온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그 독특한 향은 더 이상 낯설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향 속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청국장 한 숟가락에 담긴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시간과 사랑, 그리고 삶의 깊은 지혜가 녹아든 향기로운 추억 그 자체이다. 그 잃어버린 줄 알았던 향기는, 여전히 내 삶의 한편에서 따뜻한 온기를 품고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나 또한 천천히 청국장처럼 발효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