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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3시

거꾸로 흐르는 강

by lee nam

저기

오래된 강이 하나 있다

봄마다 피던 등나무 꽃

그 그늘 아래 앉아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부르면

강물은 천천히 거꾸로

뒤돌아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의 줄기를

감아올리듯

주름진 손등 위로

교복 치마가 나풀거리고

젖은 운동장의

흙내가 코끝을 적신다

강 저편에서는

빗소리보다 더 맑은

웃음소리가

소용돌이쳐 온다


거슬러 흐르는 강물에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들이 있다

찐빵 한 입 물고

달리던 하굣길

출석을 부를 때마다

불리던 이름들

노란 공책

한 귀퉁이에 접어둔

첫 시 같은 마음까지


누가 그 강물에

손을 담갔을까

어제, 오늘, 내일의

내가 서로 손을 맞잡고

한 여고생의 눈빛으로

고요히 서로를 비춘다


거꾸로 흐른다

추억은

갈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는 대신

잊지 말라고

내 안의 나를

다시 데려다 놓는다


오늘도 나는

그 강에 발끝을 담근다

다시금 젖어간다

내가 가장 나였던

어느 봄의 강물에


<시작 노트>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더 짙고 선명해진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문득 되살아나는 어떤 순간들―그것이 추억이다. 나는 어제 동창회에서, 꽃보다 환했던 얼굴들을 마주하며 ‘추억은 거꾸로 흐르는 강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리적인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르지만, 우리의 마음은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들을 다시 안아올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강처럼 마음속에 흐르고 있다. 그 강에 발끝을 담그면, 그 시절의 목소리와 냄새, 빛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시는 바로 그 추억의 강에 대한 노래다. 나이 든 우리가 여전히 소녀처럼 웃고, 예전처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시절이 우리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교복의 행렬’ 속에서 함께 걷던 기억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거꾸로 흐르는 강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온기’이며, 나 자신을 잊지 않게 하는 ‘거울’이다.


이 시를 통해, 나는 추억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루는 본질임을 말하고 싶었다. 추억은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나다웠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누구에게나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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