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2

쉬는 시간에 글놀이

by lee nam

교사 시절, 학교 종이 땡 치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갔다. 나는 그 무리 속에서 잠깐 빠져나와 혼자만의 자리를 찾곤 했다. 종이 울리면 곧 수업이 시작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 찰나의 틈에 나는 연필을 들고 마음의 틈을 메우듯 낙서를 했다. 그게 나의 글쓰기의 습관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나 바쁜 일상 속에서 ‘쉬는 시간’은 그저 다음 일을 위한 잠시의 여백처럼 여겨지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그 시간이 삶의 본질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커피를 마시며 보내기도 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혼자 킥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쓴다. 딱딱한 말로 하면 ‘글쓰기’지만, 나에겐 그것이 일종의 ‘놀이’다. 제목을 붙이자면 ‘글놀이’다.


‘놀이’라고 하면 어릴 적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말뚝박기 같은 신체 활동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에게 글놀이는 그만큼 생생하고 활동적인 정신의 운동이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기억을 꺼내어 이야기로 엮는 작업은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한다. 현실에서는 하지 못한 말도, 미처 돌아보지 못한 감정도,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놀이처럼 자유롭고, 놀이처럼 다정하게.


언젠가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시 한 줄을 적은 적이 있다. “나는 오늘 나를 만났다.”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했지만, 그 한 줄이 이상하게 가슴에 남았다. 내가 나를 만나는 방식은 바로 이 짧은 쉬는 시간, 글 속에서였다. 세상의 잣대나 타인의 시선 없이 오직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글은 내가 나 자신이 되는 순간이다.


시간은 흐르고, 쉬는 시간은 여전히 짧다. 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글놀이는 상상보다 훨씬 넓고 깊다. 짧은 메모 하나, 시 한 줄, 누군가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그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다. 글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놀이는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즐기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이 글쓰기 또한 어떤 평가나 성과가 아닌, 그저 삶의 틈에서 숨을 쉬기 위한 놀이일 뿐이다.


가끔은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생긴다. 친구가 “너 요즘 쓰는 글, 짧지만 위로가 돼”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감각보다는, ‘같이 놀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글을 통해 우리는 고요하게 연결된다. 뛰놀지는 않지만, 문장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건넨다. 이것이야말로 글놀이의 마법이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쓸모’ 없는 것을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듯, 어른인 나 역시 글놀이를 통해 삶을 다시 배우고 있다. 슬픔과 기쁨, 분노와 사랑, 혼란과 평온이 글 속에서 어우러지고, 나는 그 안에서 나의 감정을 배우고, 타인을 이해하며,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쉬는 시간에 글을 쓴다고 하면, 누군가는 왜 그렇게 바쁜 와중에 굳이 글까지 쓰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시간이 있기 때문에 다시 움직일 수 있다고 느낀다. 놀지 못하는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없듯, 나에게 글놀이는 다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준비운동과도 같다.


지금도 잠깐의 짧은 여유 속에서 나는 핸드폰을 열고 이 글을 쓴다. 무언가를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는 기분으로. 온종일 쌓인 생각과 감정을 문장 하나씩으로 정리하며, 나는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글을 쓰는 마음만은 오래도록 머문다. 마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아쉬움을 남긴 채 수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 역시 언제나 아쉬움을 안고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또다시 다음 글놀이를 가능하게 한다.


나에게 글놀이는 삶의 쉬는 시간이고, 쉬는 시간은 글놀이로 더욱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바쁜 삶 속에 숨겨진 이 짧은 틈, 당신도 잠깐 펜을 들어보지 않겠는가. 우리, 같이 놀아보자. 글을 쓸 적 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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