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2

나무에게 배우는 사랑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기억하며

by lee nam

누군가를 떠올리면 눈가가 젖는다는 건, 그 사람과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내 마음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나에겐 그런 책이 있다.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이 쓴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유년의 나날, 책상 서랍 속 사탕처럼 숨겨두고 꺼내 보던 작은 그림책. 아이는 그 이야기에서 슬픔보다 포근함을, 결핍보다 충만함을 배웠다. 그런데 인생의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그건 동화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말해주는 인생의 거울이었다는 것을.


책 속의 나무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를 줄 때마다 그저 말한다. “소년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단다.” 사과를 주고, 가지를 내어주고, 줄기마저 잘려나간 뒤에도 그는 여전히 소년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늙고 지친 소년이 돌아오자, 남은 건 그루터기뿐이지만 그는 또 말한다. “여기 앉아 쉬어도 좋아.” 모든 걸 주고도 미련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 남아주는 것. 나는 그 나무가 내 어머니라는 걸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헤맸다.


어머니는 삶의 어느 날에도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가 기쁘면 기뻐하시고, 아프면 더 깊이 앓으셨다. 당신의 것을 덜어내 우리에게 나눠주시면서도,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불행하다 하지 않으셨다. 언젠가는 당신이 좋아하던 작은 머리핀을 선물했더니, “이건 너무 고운 거야. 나중에 네 딸에게 물려줘.” 하시며 서랍 깊숙이 감춰두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마저도 ‘주는 사랑’이었다. 나는 자주 되묻는다. 그토록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나는 누구에게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셸 실버스타인의 나무는 기다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해줄 순간을 위해 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존재.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기다림은 점점 사라진 미덕이 되었다. 빠른 응답, 즉각적인 보상, 조건부의 사랑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 그 대답을 나는 가끔 내가 가꾸는 작은 정원에서 찾는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비가 잎을 적시고,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어도 나무는 그 자리에 있다. 아무 말 없이, 누군가가 와서 잠시라도 머물기를 기다리며. 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주는 것으로 살아 있는 나무들. 그 풍경 안에서 나는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이 왜 동화가 아니라 시였는지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내가 자식을 키우던 시간보다 손주를 맞이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사랑은 더욱 계산적이 되어간다. 그 속에서도 나는 거스르듯이 살아가고 싶다. 주는 기쁨을 알았던 이들의 뒤를 따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무처럼. 계산 없이, 끝까지 기다리며, 자신을 덜어내는 것을 아파하지 않는 존재.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존재 말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아이가 “왜 나무는 화내지 않아요?”라고 물은 적 있다. 그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화내지 않는 거란다. 사랑은 있어주는 거란다. 그저 그 자리에 남아서 네가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거지.”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면 알게 되겠지. 그루터기처럼 작아진 사랑도 여전히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인생은 결국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 보다, 얼마나 많이 주었는가로 남는다. 나무가 그랬듯, 어머니가 그랬듯, 나도 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쉼이 되어주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언젠가 내가 세상과 이별할 때, 누군가 내 곁에 앉아 이렇게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당신이 있어 참 고마웠어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 남는다. 작지만 단단한 그루터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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