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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3시

되새김의 시간

<부제:말을 삼키는 법에 대하여>

by lee nam


나이가 들면서

감정은 파도가 되고

말은 칼날이 된다


문득 나는

입 안에서

머뭇거리는 말들을

소처럼 삼키는

법을 배웠다


날것 그대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밀어 넣는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말들은

위장 속에서

다시 천천히 돌아온다


되새김질처럼

가슴으로 한 번

속으로 두 번

그리움도

서운함도

아픔도

시간 속에서

곱게 잘게 씹는다


소가 풀을 씹듯

나는 감정을 씹는다

한 입 베어 물었다면

그것을 끝까지

삼킬 것인지

내어줄

것인지를 묻는다


즉흥은 날을 세우지만

묵음은 뿌리를 내린다

버릴 말은

걸러내

거름으로 남기고

쓸 말은

피가 되어

흘러가게 한다


말을 삼키는

침묵의 기술은

세월이 가르쳐준

가장 따뜻한 무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상처 주지 않는 법


이제 나는 안다

사랑도 분노도

곧이곧대로

뱉지 않고

되씹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쓸모 있는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시작 노트>>


살아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더 섬세하고 복잡해집니다. 어린 시절엔 솔직함이 미덕인 줄 알았고, 속상하면 곧장 말로 터뜨리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이 상처를 낳고, 침묵이 사랑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는 그런 깨달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말은 때때로 생의 칼날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말의 “되새김질”을. 소처럼 천천히, 조용히, 가슴으로 한 번 더 씹어보는 일.


감정을 바로 내뱉기보다는 속으로 한 번 삼키고, 다시 꺼내 보며, 그 말이 정말 필요한지, 어떤 결과를 남길지를 성찰하는 것. 그것이 어른의 언어이고, 삶의 언어라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소화되지 않는 감정은 상처가 되고, 소화된 감정은 관계를 살립니다. 이 시는 그 과정을 형상화한 시적 기록입니다. 입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시절에, 나를 아끼고, 너를 아끼는 법을 배우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이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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