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어린 시절, 우리 집이 있던 마을 골목은 흙먼지가 풀썩이는 여름날의 열기와 아궁이 연기 냄새가 뒤섞인 따뜻한 삶의 풍경으로 가득했다. 마당에는 장독대가 줄지어 있었고, 낮은 담장 너머로는 늘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 골목에 낯선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푸른 군복 같은 옷을 입고, 목발을 짚은 채 조심조심 걸어오는 이들이었다. 철그릇을 들고, 다리를 절며, 때로는 한쪽 눈을 감거나 팔을 잃은 채. 그들은 말없이 우리 집 대문 앞에 섰고, 나는 어린 마음에 기척도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무서웠다. 이상하리만큼, 그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어떤 벅찬 비명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엄마 아빠가 마침 집에 없던 날이면, 나는 마당 끝에 바짝 웅크려 숨어 있곤 했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목발 소리가 바닥을 울리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그저 안 보이기를 바랐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상이군인’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다쳐 돌아온 분들이었다. 어른들이 그러했다. “저분들은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킨 분들이야. 우리가 고개를 숙여야 할 분들이지.” 하지만 어릴 적의 나는 그런 설명보다, 그들이 뿜어내는 비가시적 슬픔에 압도되곤 했다.
철그릇 안으로 쌀이나 보리를 쏟아붓는 엄마의 손은 빠르고 익숙했다. 쌀을 받은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돌아섰고, 목발은 다시 바닥을 울렸다. 철컥, 철컥, 그 소리는 골목 어귀를 돌아설 때까지 이어졌다. 마치 이 세상과 발맞추지 못한 사람들의 박자를 듣는 듯했다.
어릴 적 내겐, ‘전쟁’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그들의 뒷모습이 있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걷는 모습이 있었다. 전쟁은 책 속 이야기로 머물렀지만, 그들은 그 전쟁이 남긴 생생한 흔적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의 무서움이 사실은 슬픔과 연민의 변형이었다는 걸 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를 이제야 조금 이해한다. 살아남았지만, 삶에 소속되지 못한 이들. 총성을 피해 살아 돌아왔지만, 환호 대신 철그릇을 들고 골목을 다녀야 했던 이들. 그들의 침묵은 절망이 아니라, 품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은 생각한다. 그들의 걸음이 어디로 향했을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만났을까. 하루치 식량을 얻었을 때, 잠시라도 마음이 놓였을까. 혹은 밤이 되면 전우들의 이름을 불렀을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목소리가 시간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 있었으면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 골목을 지나던 목발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는 어느덧 그 시절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철그릇을 들던 그들의 손이 지금은 주름지고,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가슴이 시릴 만큼 선명하게.
우리 집 대문 앞에서 한동안 서성이다, 말없이 돌아서던 그들의 모습은 내 안에 박제된 채 살아 있다. 그들은 어쩌면, 세상이 가장 외면했던 방식으로, 가장 인간적인 존엄을 지켜낸 분들이었다. 찢긴 군복과 거칠어진 손, 무겁고 부서진 목소리로도 자신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
나는 문득 그 시절의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왜 무서웠니?” 그러면 어린 내가 대답할 것 같다. “그건 너무 슬퍼서 그랬어.” 그래, 나도 이제 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슬픔도 두려움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철그릇의 맑은 소리와, 목발의 묵직한 울림.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들리지만, 그 소리들은 내가 자라나는 내내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다. 무심한 세상에 짓눌리지 않고, 작은 떨림 하나에 귀 기울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했다.
오늘도 나는 가끔 눈을 감고 그 골목을 걸어본다. 찌는 듯한 여름날, 먼지 이는 흙길 위로 다가오는 푸른 제복의 그림자. 나는 담장 뒤에 숨지 않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작은 손에 담은 쌀 몇 줌을 내어드린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지만, 나는 이제 그들의 뒷모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도록 그들이 걷는 길 위에 내 마음을 얹어 따라 걷는다.
철컥, 철컥.
그 소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