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원래 부끄러움이었다. 그것은 벌이었다. 그것도 인간이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형벌. 로마 제국은 그 형틀을 통해 식민지 백성과 노예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제국 앞에서 무력하다. 반역의 대가는 이렇게 처참하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었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음이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이 말은, 바로 그 시대적 모순을 꿰뚫는 고백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영적 맥락이 한데 얽힌 충돌이었다. 그는 죄인으로 취급되었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한 것이 결국 신성모독죄로 몰려 십자가형을 받았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를 제거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려 했고, 로마는 반란의 싹을 자르기 위해 그를 처형했다.
이처럼 십자가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던 ‘저주’의 상징이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따르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예수님의 죽음은 그 말씀 그대로, 철저한 저주와 수치의 길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초대교회 성도들이 “우리의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데 얼마나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을까.
십자가는 단순히 형틀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진 존재의 자리였다. 거기에는 체면도, 존엄도, 자존도 남지 않았다. 옷은 벗겨지고, 살은 찢기고, 군중의 조롱 속에서 벌거벗겨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그 순간.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셨다. 그는 침묵하셨고, 용서하셨으며, 결국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한마디로 그 고통의 끝을 봉인하셨다.
나는 그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문득 묻고 싶어진다. “십자가가 정말 부끄러운 것인가?” 아니, 십자가를 부끄러워한 것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피하실 수도 있었다. 실제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는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지만 곧 덧붙이셨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분은 고통을 택하셨고, 수치를 감당하셨다. 단지 육체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영적 무게를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십자가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시선이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그분이 체포되던 날 밤, 세 번 부인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 말속에는 공포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메시아라면 칼을 들고 왕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왜 붙잡히고, 왜 맞고, 왜 저주의 나무에 매달리는가? 그 납득할 수 없는 길 앞에서, 그는 등을 돌렸다.
하지만 부활 이후의 베드로는 달라졌다. 그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길을 따라 걷기로 결단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로마에서 처형당할 때 “내 주와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다고 한다. 그에게 십자가는 더 이상 수치가 아니라, 영광의 표지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를 목걸이로, 장식으로, 건물 외벽에 세워두지만, 그 상징이 내 삶 속에서 진정 살아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십자가를 자랑한다 말하면서, 정작 그 십자가가 말하는 희생, 용서, 낮아짐을 외면한 적은 없는가? 사회적 약자 앞에서 고개 돌리고, 내 유익을 위해 타인의 눈물을 무시할 때, 나는 여전히 십자가를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그것을 얻으리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을 감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비우고, 자기를 부인하며,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반대되는 길을 택하겠다는 내적 고백이다. 그 고백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 십자가 앞에서 떨고, 때론 주저하고, 때론 숨는다.
그러나 십자가는 묻는다. “너는 나를 부끄러워하느냐?” 그리고 동시에 속삭인다.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하였다.”
이제 나는 기도한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그것이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의 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수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