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나는 어머니가 집 근처에 있는 텃밭에 쑥갓, 상추, 깻잎, 아욱 등 다양한 채소들을 가꾸시는 것을 보며 자랐다. 까만 땅속에 묻혔던 씨앗들이 파란 싹을 틔우며 툭툭 튀어 오르는 과정은 마법과 같아 보였다. 이런 기억들은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됐어도 항상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10년 전, 알링턴 하이츠 공원국에서 주관하는 마을 텃밭 가꾸기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매년 채소를 가꾸고 있다. 채소 가꾸기는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도 내 소중한 취미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10년 전 나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 1년 반 동안 병상에 누워 투병생활을 했다. 나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당시 나는 대장암 발병은 식생활의 서구화가 원인이라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직접 내 손으로 채소를 길러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나는 채소 가꾸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실수와 어려움에 부딪히곤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열정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을 찾아가며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적용해 보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이에 대한 지식들을 몸소 터득하게 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텃밭의 면적이 점차 더 넓어지고 기르는 채소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해마다 봄, 여름, 가을이면, 매일 일을 마치고 난 후, 텃밭으로 달려가 채소를 돌봐주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채소 가꾸는 일이 계기가 돼 나는 암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 있었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의 텃밭은 ‘나의 힐링 가든’이었다.
고향을 떠난 후, 나는 슈퍼마켓에서 채소를 사다가 먹었다. 그러나 그 채소가 어디서 자란 것인지, 누가 길러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식탁에 올라온 채소는 다른 것들보다 훨씬 맛있고 진한 향이 났다. 작은 씨앗을 심고, 물과 거름을 주며 나 자신의 정성을 쏟아 수확한 채소들이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먹거리가 누군가의 수고 덕분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 수고로 얻은 채소를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느꼈다. 추수철이 되면 나는 퇴근 후 더 바빠졌다. 한동안 나는 채소 나누는 일에 내 정성을 쏟아야 했다. 나는 깻잎을 뜯어 50장 혹은 100장을 갠 후 봉지에 담고, 상추와 고추 그리고 열무와 쑥갓, 미나리 등도 봉지에 나눠 담아 차에 실었다. 이웃과 만날 장소는 주로 문자나 전화로 미리 정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그 장소에서 채소 봉지를 전해주곤 집으로 왔다 그런데 운전을 할 수 없는 노인들 경우에는 직접 집에까지 배달을 해드려야 했다. 어떤 이웃은 장시간 일을 하고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하루는 내가 그 집 주차장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대문 옆에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는 재빨리 채소 봉지를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에 채소 봉지를 달아 놓고 가요.”라고 문자를 날렸다. 이러한 나의 작은 나눔은 팬데믹의 거리 두기로 단절된 나와 이웃과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회복시켜 주었다.
텃밭 가꾸기를 통해 나는 많은 뜻깊은 교훈을 깨닫게 됐다. 그중에서도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자연과 내가 소통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작년 여름, ‘바람의 도시’라고 불리는 시카고에 강한 태풍이 몰아쳤다. 날이 새자마자 우리 부부는 자동차를 몰고 쏜살같이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고추 모종들이 뿌리째 뽑힌 채 밭두둑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너부러져 있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본 우리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가게로 달려가 지지대와 끈을 사 왔다. 그리고 고추 모종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세워 지지대에 끈으로 단단히 묶어 주었다. 그런 후 고추 모종들은 우리 정성에 감동한 듯, 한 포기도 죽지 않고 생생하게 잘 자라면서 생명의 놀라운 신비를 느끼게 해 주었다 가을이 돼 텃밭은 고추 열매들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었다. 우리 텃밭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내 텃밭에 벌과 나비들이 날아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매우 반가웠다. 누가 그들을 불러들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벌과 나비들은 한동안 날마다 내 텃밭에 찾아와 부지런히 꿀을 따고 있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나는 중학교 이후, 도시 생활만 하다가 미국에 왔다. 긴 세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자연과 완전히 단절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나 텃밭 일을 하고부터, 나는 다시금 자연과 소통하면서 살게 됐다. 나의 작은 공간 텃밭은 자연의 생태계가 다시금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텃밭은 그 자체로 매우 치유적인 공간이다. 나무와 식물, 그리고 흙과 햇빛, 그리고 새들의 지저귐과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최근 들어 힐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힐링은 삶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감정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힐링은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그런 힐링의 공간 중 하나가 바로 텃밭이다. 텃밭은 자연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나는 텃밭을 가꾸면서 마음의 평화와 건강을 되찾았다. 또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러 해 전부터, 나는 내 주변의 아픈 분들을 힐링 가든으로 초대해 왔다. 그분들은 직접 채소를 기르며, 작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소중한 경험을 하셨다. 나는 그분들이 힐링 가든에 와서 상추, 쑥갓, 깻잎, 대파, 고추, 열무 등을 직접 수확해 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느꼈다. 한 번은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분이 힐링 가든에 찾아왔다. 그분은 우리 텃밭에서 시간을 보낸 후, 삶의 의욕을 많이 되찾았다고 했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토대로, 올해부터는 나는 더 많은 이웃들과 함께 작은 텃밭을 가꾸며 그에 대한 지식도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제는 나의 작은 텃밭이 동네 모든 이웃들에게 기쁨과 안정감을 되찾는 좋은 공간이 되었다. 앞으로도 우리 텃밭은 고통받는 이웃들이 고통을 나누는 쉼터가 될 것이다.
나의 힐링 가든은 인접한 이웃들과의 소통을 위한 소중한 공간이다. 함께 수확한 채소를 나누며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인접한 이웃들과의 유대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삶의 질을 높여 주며, 힐링 가든에서의 경험은 삶의 다양한 가치와 보람을 안겨준다. 그리고 힐링 가든에서 보낸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고 신선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텃밭 가꾸기를 통해 자연의 조화와 내면의 평화를 경험하며 더 큰 성숙함을 얻었다. 앞으로도 힐링 가든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