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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나의 글밭

by lee nam

봄부터 가을까지, 나는 채소밭에서 살았다. 퇴근 후엔 밭으로 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흙을 만지며 싹을 틔우는 기쁨을 누렸다. 열무, 깻잎,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까지, 내 손끝에서 자란 작물들을 이웃과 나눌 때면, 내 아이들을 내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흐뭇했다. 하지만 채소를 나누며 얻는 보람만큼이나 내 글밭은 방치된 셈이었다.


여름 내내 흙냄새와 땀방울 속에서 살다 보니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하루가 끝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잠들기 바빴다. 펜 대신 호미를 쥔 나 자신이 어쩐지 밭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마음속 글밭은 비어 있었고, 새싹을 틔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있었다.


가을이 깊어 무서리가 내리고, 채소밭이 고요히 문을 닫았다. 밭을 정리하고 나니 한 해의 수고를 마친 허전함과 동시에 은은한 기대감이 밀려왔다. 이제는 나의 글밭을 들여다볼 때가 된 것이다. 오랜 휴식을 취한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이야기들이, 나누고 싶은 생각들이 새롭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제 내 글밭에 디카시, 소설, 시, 동화, 수필, 시조, 에세이, 수기들이 자그마한 씨앗으로 자리 잡는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파종하며, 그 속에서 싹이 돋고 열매가 맺히는 상상을 해본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그 글에서 꽃과 열매가 피어날 때, 내 글밭은 다시금 풍성한 수확을 이룰 것이다.


글밭을 가꾸는 일은 채소밭을 돌보는 일과 닮아 있다. 정성껏 씨를 뿌리고 가꾸는 그 과정은 나를 더 깊고 단단하게 해 준다. 이 글밭에 씨앗을 심으며, 언젠가 내 글들이 다른 이의 마음밭에도 작은 싹을 ㅏ틔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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