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이 떠나고, 이제 우리 부부 둘만 남은 집은 조용하고 넓다. 벽에 걸린 사진 속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그 웃음소리마저 먼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텅 빈 방들과 고요한 집안 곳곳에는 떠난 이들의 흔적이 흐릿이 남아있다. 한편으론 그리워지면서도, 적막한 집에서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서로의 존재를 더 깊이 마주하고 있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들고나가는 쓰레기봉투가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날마다 가득 차는 봉투를 동네 쓰레기 수거장에 버리면서, 마음 한 구석도 살짝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제도 비웠는데, 오늘도 어느새 가득 찬 쓰레기통을 보며 나는 내 안에 쌓인 작은 감정들과 소소한 일들을 떠올린다. 버리려고 해도 계속 차오르는 일상의 잡동사니처럼, 마음속에도 자잘한 아쉬움이나 미처 정리하지 못한 기억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손에 든 봉투를 수거장에 내려놓을 때마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아이들이 남긴 작은 흔적들을 정리하며, 그동안 놓지 못했던 지난 감정들도 조금씩 내려놓는다. 집안의 고요함이 늘 새로운 듯한 것은, 그렇게 매일 조금씩 비워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소박한 일상에 작은 이야기들이 스며들며, 새로운 추억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매일 아침 나는 내 안의 오래된 감정들을 정리하며 길을 나선다. 어쩌면 이렇게 조금씩 버리고 비우는 시간이, 새로운 무언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일 것이다. 남편과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말 한마디, 가볍게 웃음 짓는 순간들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길, 나는 비움의 여운 속에서 다가올 새로운 추억과 따스한 순간들이 내 마음에 차오르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내일 아침도 어김없이 그 봉투를 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