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나는 타주에 사는 딸네 집을 찾는다. 오랜만에 딸 가족과 다시 만나니 집 안엔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고, 손주들의 밝은 얼굴은 늘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특히 큰 손녀는 나를 기다리며 벌써 채소밭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을 해 두었다. 올해는 어떤 씨앗을 심을지, 무엇이 제일 빨리 자랄지, 저마다 작고 귀여운 계획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함께 작은 텃밭을 준비하며 계절의 첫걸음을 맞이한다.
손자 손녀들과 함께 텃밭에 씨앗을 뿌릴 때면, 내 손길보다도 아이들의 손이 더 분주하다. 아이들은 작은 삽을 들고 이리저리 흙을 고르고 물을 주면서 채소밭을 가꾸기 시작한다. 마음을 담아 뿌린 씨앗들이 자라날 상상을 하면, 아이들의 눈망울이 반짝이고 작은 웃음소리가 텃밭 위로 울려 퍼진다. 씨앗 하나하나에 아이들의 기대가 담긴 걸 알기에 나 또한 정성스럽게 흙을 덮고 다독인다. 마치 그 씨앗들이 아이들의 꿈처럼,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다.
텃밭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한창 자라날 채소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텃밭에 남아있다. 내가 떠난 자리에서 싹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는 순간을 함께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늘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녀가 곧 사진을 보내주리라는 기대가 마음을 달래준다.
큰 손녀는 그 작은 텃밭이 얼마나 자라는지 수시로 사진을 찍어 보내며 채소밭의 변화를 전해준다. 그 작은 손으로 잎을 펴 보이며, 줄기가 조금씩 자라는 모습과, 생명이 땅 속에서 천천히 세상으로 나오는 그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함께했던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진 속에 담긴 것은 그저 채소뿐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한 사랑과 추억의 시간이 아닐까.
손녀가 보내준 사진 속에는 단순한 채소들이 자라는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엔 우리가 함께 쌓아온 추억과 사랑이 숨겨져 있다. 아이들은 씨앗을 심고 자라는 채소를 보며 자연의 순환을 배워가고, 나 또한 그 텃밭을 통해 가족 간의 깊은 유대를 느낀다. 이렇게 함께 가꾸고 돌본 텃밭은 계절을 넘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오늘도 푸르게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