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쉼표

by lee nam

지난 주말 늦가을 오후, 찬 바람이 창을 흔들고 낙엽이 휩쓸려 가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차 한 잔을 끓여놓고 창가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분주히 하루를 마감하려던 참이었지만,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져 한 걸음 물러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신호등의 빨간 불빛처럼, 내 앞에 서서 ‘잠시 멈춰라’고 조용히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오가는 차들이 잠시 멈춘 신호에 따라 숨을 고르고 있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선 그 모습이 신기하게도 편안해 보였다. 아마도 내 삶에도 그런 멈춤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내가, 문득 저 빨간 불에 맞춰 내달리던 발걸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볼 때도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참을 그렇게 창가에 앉아 있자니, 어느 여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나는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한발 물러나 쉼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해 질 무렵, 한적한 바닷가에 서서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던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랜만에 느껴지는 평화로움이 내 안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주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며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그런 고요함을 느꼈던 그때의 순간이 나를 감싸 안았다.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 보니, 신호등이 보내는 멈춤의 순간이 어쩌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바람이 더 세차게 흔들리며 나무에서 마지막 잎사귀마저 떨구어 낼 때, 그 자리는 비어 보이지만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위한 쉼의 시간이 된다. 이 잠시의 멈춤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 속에서 새롭게 다가올 순간들을 준비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차를 다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나는 생각했다. 빨간 불에 잠시 멈춰 선 그 시간 속에서, 나도 나의 쉼표를 찍어가기로. 다음번 신호등이 녹색 불빛으로 바뀌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디뎌 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