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에세이
주역의 피날레는 진한 페이소스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주역의 64번째, 그러니까 마지막 괘 화수미제(火水未濟)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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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우 한 마리가 주역의 종결자다.
어리지만 질곡(桎梏)과 신산(辛酸)을 거쳐 온 여우다. 여우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강 앞에서 잠시 멈춘다. 시선을 뒤로하고 자신이 걸어왔던 머나먼 길을 추억한다. 이제 다 이루어졌다. 저 강만 건너면 유랑은 끝난다. 그는 명민한 몸짓으로 강 저편을 향해 몸을 날린다.
.. 어린 여우가 강을 막 건너려는데,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주역의 마지막 말은 어린 여우의 실패담이다. 주역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괘가 미완(未完)을 상정하고 말았다. 여우는 무사히 강을 건넜어야 했다. 그렇게 삶의 한 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연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물에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자신의 긴 여행을 완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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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제대로 건너지 못한 여우는 원망의 눈빛으로 한동안 자기 꼬리를 쳐다본다. 왜 이런 일이…….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간의 여정을 정리했어야 하는데, 새로운 국면을 위해 완결과 단절이 필요했는데……. 그러나 우리의 어린 여우는 잠깐의 회한을 뒤로하고, 다시 고개를 든다. 그 예쁜 눈을 초롱초롱 빛내더니 다시, 가볍게, 천천히 걷는다. 물에 젖은 꼬리 따위 훌훌 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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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은 정체(停滯)다. 미완만이, 흠결만이, 아쉬움만이, 회한만이, 아픔만이 사람을 역동적이게 한다. 갈등과 모순 없이 전진이 있던 적은 없다. 꼬리를 적신 여우만이, 그렇게 몸과 마음에 반성의 생채기를 가진 여우만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주역 64괘가 다시 돌기 시작한다.
상처받은 여우는 강을 건넌 후에도, 다시 자신의 삶을 돌이킬 수 있다.
상처받은 삶이 오래간다.
끝에서 시작하는 삶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