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사회: 사기 범죄 천국의 도래

우리가 사기범죄에 취약한 진짜 이유

by 김혜경
9791130346694.jpg 출처 교보문고

최근 들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수천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마약이 적발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대규모 적발은 미국의 정보력과 한미 공조 수사의 결과이며, 우리 단독으로는 이처럼 거대한 범죄조직의 실체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마약청정국이라는 호칭은 이미 오래전에 반납된 상태이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kanchanara-tTijQVzct2w-unsplash.jpg 출처 Unsplash의Kanchanara

그러나 문제는 마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가상자산 투자사기 등 다양한 유형의 사기범죄가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특정 계층이 아닌 대다수의 서민, 즉 국민 모두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범죄 수법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느리고 무디기만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읽은 책이 바로 모성준 판사의 '빨대사회: 사기범죄천국의 도래'이다.


책은 “빨대를 꽂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조직적 사기범행이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코인투자사기, 다단계사기 등 전방위로 확산된 이유를 추적하며, 현실을 ‘사기범죄천국’으로 만든 제도적 맹점을 짚어낸다. 단순한 현상 나열이 아니라, 법조인의 시선에서 사기범죄의 구조적 원인과 해결 과제를 집요하게 파헤친다는 점에서 울림이 깊다.


모성준 판사는 “국회가 국가의 전체 수사 권한을 토막 내면서 국제적 사기범죄 조직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일갈한다. 실제로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사기 범죄는 32만 건을 넘어섰으며, 피해액은 29조 원을 초과했다. 이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범죄수익을 웃도는 수준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 사기범죄의 초강대국으로 치닫고 있다.

bermix-studio-56CjIvG10lo-unsplash.jpg 출처 Unsplash의Bermix Studio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사기범죄 조직의 수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들은 휴대폰 알림 하나, SNS 메시지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마치 빨대를 꽂히듯, 일상 속 작은 방심이 거대한 범죄조직의 연료가 되어버린다.


이 책이 특히 날카로운 지점은, 단순히 범죄의 심각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이토록 사기에 취약하게 되었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검수완박, 수사 착수 요건의 과도한 제한,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 약화 등은 모두 범죄자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준 법제도적 실패였다.


심지어 형사사법 시스템의 '결정 미루기'가 사기범죄에 방조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수사기관 간 책임 전가, 판단 회피, 피의자의 권리 남용 구조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몫이 된다. 책에서는 이를 '소문난 맛집 오마카세를 김밥 가격에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허황된 가이드'에 비유하며, 정치권의 안일함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tingey-injury-law-firm-veNb0DDegzE-unsplash.jpg 출처 Unsplash의Tingey Injury Law Firm

무엇보다 이 책이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국민의 안전’과 ‘사법정의’가 실제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체감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고,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는 이 불편한 진실을 독자 스스로 마주하게 만든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질문한다.

“우리를 둘러싼 사기범죄의 빨대를 뽑아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 물음은 나에게 하나의 선언처럼 들렸다. 이 사회가 '사기범죄 천국'이 아닌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 할 때라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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