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는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다 -
젊은 날, 믿음은 늘 저 멀리 있었다.
삶은 바빴고, 신은 낯설었다.
중학생 시절, 개신교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누군가 따뜻하게 하느님의 품으로 이끌어주는 손길은 없었다.
직장에 다닐 땐 일요일 단 하루뿐인 휴식을, 성당을 향한 발걸음에 쓰기엔 주저함이 컸고
퇴직 후엔 지인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머니를 뵈러 가는 일요일의 소중함이 먼저였다.
교회도 성당도 포근하고 따뜻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려면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교리, 형식, 절차…
그 앞에서 나는 늘 작아졌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제주 한 달 살이를 시작하며, 자주 찾는 곳이 생겼다.
서귀포의 약천사.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 곤히 자는 아내를 깨우기 미안할 때,
나는 조용히 차를 몰아 약천사로 향한다.
절은 문턱이 낮다.
마음만 내면 언제든 들어설 수 있고,
그 어떤 형식 없이도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
6시 30분쯤 도착하면 스님은 늘 예불을 올리고 계신다.
작은 시주를 준비해 예불이 끝나면 성금을 드리고,
절 앞 조용한 자리에 앉아 하늘빛을 바라본다.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토록 좋은 절이 있고, 고요히 예불을 드리면 마음이 이토록 안정되는데,
왜 사람들은 좀 더 자주 이런 곳을 찾지 않을까?”
나는 믿음을 장소로 구분하지 않는다.
절이든, 성당이든, 교회이든
신성한 자리 앞에 앉으면 가장 중요하고 급한 소망 하나를 꺼내어 놓는다.
그리고 반드시,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나만의 실천 방안도 함께 내놓는다.
예를 들어 약천사에서는 이렇게 기도했다.
“아내와 함께 한 달 살기 하러 제주에 왔습니다.
한 달 동안 안전하고 즐겁게, 평온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양보하며, 대화로 하루하루를 따뜻하게 쌓아가겠습니다.”
내 방식의 첫 기도는 구례 화엄사,
연기조사가 어머니께 차를 올리던 그 신성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나는 절실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경남 산청 지리산에서 난 산불이 멈추고 어머니께서 계신 요양원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비 예보가 있으니, 그 빗줄기가 불길의 기세를 꺾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적처럼 들려온 산불 완전 진화 소식.
나는 그날 이후 나의 기도를 믿기로 했다.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다.
단, 그 기도 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이 담겨야 한다.
방주교회에서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기도했다.
“요즘 갱년기 후유증으로 잠을 잘 못 자는 아내가 오늘 밤만큼은 깊이 잠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를 조금 덜 마시도록 조심스럽게 권유하고, 함께 걷는 시간을 늘리며, 낮잠은 조금만 줄이자고 말해보겠습니다.”
그 기도 또한 이루어졌다.
밤이 지나고 아내는 환한 얼굴로 눈을 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특정한 신을 믿고 살아오진 않았지만
절이든 교회든 성당이든, 중요하고 급한 소망 앞에서 마음을 다하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나만의 다짐을 함께 드리는
나만의 기도, 나만의 종교 생활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신을 갖지 않았지만,
고요한 성스러운 자리에 이르면
마음을 내려두고, 조용히 속삭이듯 소원을 빌 때가 있다.
그 소원은 하늘에 맡기는 의탁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건네는 다짐이다.
“이 절실함을, 나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간절한 마음이 길을 밝히고,
내 안의 목소리가 조용히 답을 건넨다.
기도는 하늘이 아닌, 내 안에 드리는 것.
간절한 다짐은 결국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순간, 나는 말할 수 있다.
기도는 이루어졌다.
표지사진 설명: 제주 한달살이 하는 동안 방주 교회를 찾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늦게 배운 기도는 마음을 여는 용기로 깊어지는 것 같다. 교리와 형식, 절차를 모르지만 마음을 다해 한 가지를 기도하고 내 안의 실천약속을 정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것이 신앙심의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