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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날들 'Perhaps Sunny Days'

by 올제


< 당연한 것은 없다 >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젊은 부부를 만났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공손히 인사를 건넨다.

“하버지, 안녀하세요~~”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너는 참 좋겠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세상에 늦게 태어나서 말이야.”

그 말을 하고 나니, 문득 스스로 되물어보게 됐다.


과연, 세상에 늦게 태어나는 것이 정말 축복받은 일일까?


아마도 내가 만난 2세 아이는 우리세대보다 2~3배 무덥고 긴 여름을 견디어 내야 할 것이고,

우리 세대보다 훨씬 힘든 취업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밀양의 낮 기온이 39.2도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7월 초순으로는 역대 최고 기온이다. 이런 기록적인 더위는 아마 올여름 내내 이어질 것 같다. 40도를 넘는 날도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보았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생명체의 99%는 이미 멸종했다.
1억6천만년 넘게 번성하던 공룡도 결국 사라졌고,
불과 20만 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인류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 이 세상에 영원하고 당연한 것은 없다.


지금처럼 인간만을 중심에 두고, 지구를 돌보지 않는다면, 결국 이 땅은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제주에서 행복한 두 달 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 느끼지 못한 이상 증상을 발견했다.

자다가 팔이 저려 잠을 깨는 일이 잦아졌다.


내 건강에 이상 신호가 찾아온 후,

그 당연했던 일상들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가!

아침에 거울 앞에서 칫솔질을 하던 중, 튼튼한 내 이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소고기를 씹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이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 하나로 나는 얼마나 많은 맛을 누려왔던가.


자동차가 있어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오가고,

아파트가 있어 바람과 비를 걱정하지 않고 잠들 수 있으며,

감기에 걸려도 근처 병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어느 날,

그 당연함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수많은 문명과 생명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는 스위스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1969년에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이라는 저서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Denial) —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부

분노(Anger)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분노

타협(Bargaining) — ‘만약 ~ 한다면’ 식의 조건부 희망

우울(Depression) — 깊은 슬픔과 절망

수용(Acceptance) — 결국 받아들이는 마음


살아있음도, 누리고 있음도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하루를

얼마나 고맙게 누려야 하는가.

은퇴 이후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무언가를 계속 채우려 하기보다,

나누고 비워야 더 귀해지는 날들이 있다.


< 어쩌면 살아있는 매일의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날들 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에세이 책 제목으로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로 정해 볼까 한다. >

지난해 봄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Perhaps Sunny Days)’의 이름으로 기획전시를 하였다. 이 전시회를 보면서 요양원에 가야만 하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의 브런치 스토리 첫 제목을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로 정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Perhaps Sunny Days)’은 노년과 인지저하라는 무게 아래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삶의 순간들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조명하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이 파편처럼 조금씩 흩어지고 서서히 사라진다 해도, 그 잔영 속에서 ‘아름다운 날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일깨우는 전시였다.


< 이제는 은퇴 후 나의 시간을 다시 정리해야겠다. >


외향적인 성격의 퇴직 교사인 나는 평생 ‘사람 사이’를 살아온 사람이다.

취미와 봉사, 나눔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삶을 다시 설계하고 싶다.


- 브런치 글쓰기, 내 생각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일이다. -

그래서 퇴직 후에도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내 마음의 조각, 내 삶의 풍경, 내 생각의 흔적을
하얀 화면 위에 천천히 펼쳐놓는 일에 빠져든다.


그렇게 쌓인 글들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흔적이 되고,
멀리 있는 이의 마음에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다.


- 사진 찍기, 세상을 채집해 보는 일이다. -

언제부턴가 나는 사진을 찍는 일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창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를 품는다.


특히 제주는 내게 끝없는 영감의 땅이다.

사계절이 뚜렷하면서도, 하루 안에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비와 햇살이 얽히는 섬.

이곳의 자연은 잠시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은 섬을 깎고, 구름은 하늘을 다시 그린다. 그러다 문득 펼쳐지는 풍경 앞에 마음이 멈춘다.


나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혼자 보기 아까운 빛과 그림자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사진 속 풍경을 통해 누군가는 제주의 숨결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잠시 마음을 쉬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카메라는 내 손에 쥔 작은 창이다.

그 창을 통해 나는 제주를 바라보고, 변해가는 하늘과 바다, 돌담과 풀꽃을 기록한다.

그렇게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여 나만의 '제주 이야기'가 된다.


- 봉사 활동,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

학교 밖 청소년,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또는 진로에 갈피를 못 잡는 아이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 진로교사의 경험을 살려 단순히 공부만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과 따뜻한 조언을 들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문화해설사 자격을 취득하는 일도 꼭 해보고 싶은 봉사활동 분야이다.

역사와 문화를 해설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여행도 겸할 수 있으니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될까.


< 인생이란, 직박구리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가는 찰나만큼 짧다. 머뭇거리다가는, 한 번뿐인 그 순간을 놓치고 후회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

퇴직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한층 더, 나를 위해 살아갈 기회다.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와 봉사도 찾아봐야겠다.


내가 가진 경험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일들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기적이며,

감사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더 열심히, 더 따뜻하게 살아가야 한다.


표지사진 : 제주의 표선 바닷가에서 찍은 돌담이다. 돌담을 자세히 보면, 사이사이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멀리서 보면 허술해 보이고, 금세 무너질 것 같지만, 바로 그 구멍이 돌담을 지탱하는 비밀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돌담은 그 바람을 막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틈을 내어 바람을 품고, 흘려보낸다. 바람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엉성함 속에 숨은 여유, 그 여유가 돌담을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제주 사람들의 삶도, 어쩌면 그 돌담처럼 틈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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