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일이~" 진돗개와 섬에서 나눈 하루
벌써 4년째, 매주 금요일이면 4명의 지인들과 함께 산과 둘레길을 걷는다.
어디를 가든, 4명이 가장 좋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식사 자리에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결정을 할 때 복잡하지 않아 편안하다.
최근에는 한 명이 더해져 다섯 명이 되었다. 혹시 누구 하나 급한 일로 빠지더라도, 넷은 유지되게끔 한 셈이다.
< 지난주 여수 섬 낭도에 다녀왔다.>
여수 낭만 낭도길은 전라남도 여수시 낭도(浪島)에 위치한 해안 둘레길로,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천천히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이다. ‘낭만’이라는 이름처럼,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감성적이고 평화로운 길이다. 총길이 10km 남짓한 둘레길은 평탄했다. ‘낭도(狼島)’는 섬의 모양이 여우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섬에서 가장 높은 상산도 해발 278.9m에 불과했다.
섬에는 금빛 모래가 부드럽게 깔린 장사금 해수욕장,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는 천선대 암반, 그리고 신선대 주상절리 같은 볼거리도 많았다.
그러나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풍광이 아니라, 둘레길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한 마리의 진돗개였다.
목줄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주인이 있는 개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낯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니, 그 긴 길을 우리와 함께 걸었다.
우리는 이 개에게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낭만아, 엄마 기다리셔. 이제 집에 가야지.” 몇 번을 타일러도 녀석은 끝끝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 우연히 '낭만이'를 만나다. >
‘낭만이’는 진돗개 치고 체구가 작았고, 나이도 많아 보였다. 어깨와 뒷다리에 근육이 빠져 있어 힘이 없어 보였고, 성대는 퇴화되어 마치 천식 걸린 노인처럼 숨소리가 거칠었다. 자세도 진돗개 특유의 꼿꼿함보다는 자신 없는 듯 흐트러져 있었고, 꼬리를 내리고 걷는 시간도 많았다. 내 눈엔 대략 열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쉴 때면 우리가 가져간 간식과 우유를 함께 나누며 숨을 돌렸다. 다시 걷기 시작하면 또 조용히 따라왔다. 때론 앞서가며 길을 인도하듯 걷고, 때론 뒤따라오며 우리를 살폈다. 낭만이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걸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산객들과 익숙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어쩐지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평소 전원주택과 반려견을 꿈꾸었기에, 낭만이에게 정을 주었다. 말을 걸고, 간식을 나누고, 눈을 맞췄다.
길을 걷다 사진을 찍느라 뒤처질 때면, 낭만이는 나를 향해 달려오곤 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빠~~ 너무 뒤처지면 안 돼요. 길을 잃을 수 있어요.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 낭만이는 어떻게 우리와 함께 3시간동안 동행했을까? >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에게, 낭만이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개가 먼저 앞장서거나 길을 돌아보며 걷는 행동은 ‘길잡이 본능’ 일 수도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길을 누군가에게 안내하고자 하는 충동, 그것이 개의 깊은 본능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서 느껴진 친절한 기운, 낯선 냄새, 말 없는 숨결… 그 속에서 낭만이는 ‘이들은 나를 해치지 않을 이들’이라는 안심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이 섬에 살아오면서 스스로 판단한 것 같다.
“이 사람들과는 같이 걸어도… 괜찮겠다.”
진돗개는 영역 본능이 강하다. 자신의 터가 어딘지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걷는 시간이 충분히 즐거웠다면, 혼자서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자신한 것 같다.
동네 주민으로부터 이 낭만의 주인은 자애로운 할머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개로 자란 것이리라.
이제는 나이 들어 주인과 함께 오래 걷기 어려워진 '낭만이'가, 혼자만의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산행을 즐긴 하루였던 것이다.
그날, 반려견을 자식처럼 여기고 끝없는 사랑을 주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4년간의 산행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깊은 교감의 하루, 그 마음이 오래 남는다.
2026년, 내년 봄에는 다시 '낭만이'를 만나러 낭도에 가보려 한다. 부디 그때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 따뜻한 눈빛을 또 한 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라~~
표지사진 설명: 여수 낭만 낭도길은
해안길과 숲길이 조화를 이루는 코스
중간중간 펼쳐지는 바다 전망, 갯바위, 소나무숲, 그리고 섬마을 풍경
마을 주민이 관리하는 작은 쉼터, 해풍 맞은 텃밭, 돌담길 등 정감 있는 풍경으로 봄에 가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