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값 [ 디카시 023 ]
이명이 찾아온 뒤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침묵에도 결이 있다는 것을.
누워 있으면
창밖의 바람결이
귓속을 스쳐갑니다.
그 바람조차
고요의 한 조각이었음을, 이제야 압니다.
몸 어딘가 고장이 나면
그제야 깨닫습니다.
아무렇지 않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정교한 균형 위에 서 있었는지를.
인간은 참 어리석습니다.
빛을 잃고 나서야 눈이 트이고,
소리를 잃고 나서야 마음이 들립니다.
오늘도 귓속에
작은 파도가 밀려옵니다.
그 속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증거를 듣습니다.
요즘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새벽에 잠에서 깨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도 괜찮다.
잠이 깨면 브런치 스토리가 있으니, 글을 정리하다가 다시 누우면 된다.
잠들기를 기다리며, 문득 이명이 없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때는 잠이 오기 전의 고요한 시간이 내 몸의 균형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던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우리는 언제나 소중한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표지사진 설명: 제주도 본태 박물관 (무한거울방 – 영혼의 광채, 2008, 쿠사마 야오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귀(耳)’는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기관이 아니라, 세상과 나를 잇는 감각의 창이며, 타인의 우주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이다. 눈이 세상을 보는 우주라면, 귀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우주이다. 작품이란 본인이 이해하기 나름이지만 오늘 보이는 무한거울의 '영혼의 광채'가 나에게는 귀에서 들리는 잡음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