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름에서

억새꽃 어머니 [디카시 022 ]

by 올제

가을 제주 오름에
억새꽃이 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그 자태,
그것은 오래도록 삶을 견뎌온
어머니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억새는 바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웠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이파리,
그건 세월이 어머니 머리 위에
조용히 내려놓은 꽃잎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억새는 노래하고
어머니는 미소 지었습니다.


젊은 날의 눈물도,
묵은 고통의 흔적도
이제는 다 바람에 실려 흩날릴 뿐—


저녁빛이 오름을 감싸면
억새꽃이 마지막으로 반짝입니다.


모든 꽃이 저문 뒤,

홀로 은빛으로 빛나는 그 모습은

삶의 늦은 아름다움,

즉 세월을 견뎌낸 존재만이

품을 수 있는 빛을 상징합니다.


< 산굼부리의 억새꽃이 절정을 이루어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였다. 거친 바람에 온몸이 흔들려도 결코 부러지는 법이 없다. 참으로 억센 우리 민족의 풀이다. >


< 용눈이 오름의 억새풀은 마치 잔잔한 파도가 치는 듯한 물결을 이루고 지나간다. 우리나라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제주만의 특별한 경관이었다. 브라보 소리가 절로 나왔다. >


표지사진 설명: 해마다 찾는 가을 올레길 축제, 올해도 어김없이 제주 올레길을 찾아 나선다. 제주의 가을을 상징하는 새별오름과 산굼부리의 억새밭에서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꽃을 보면서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우리네 삶과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억새꽃의 은빛 꽃이 어머니의 머리칼에 핀 흰머리 꽃과 오버랩되었다.

가을 제주도 억새꽃 명소를 정리해보았다. 시기적으로는 10월 25~30일이 절정인 듯하고 억새꽃 명소로 산굼부리, 용눈이오름, 큰사슴오름, 아끈 다랑쉬오름, 제주당 억새밭, 새별오름 등을 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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