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시니어 봉사활동을 지원하며
드라마〈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보면서, 한 개인의 서사라는 생각보다 한국 직장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의 말투와 행동, 조직 안에서 흔히 보는 갈등이 너무 익숙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상사를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사람을 존중하는 관리자와 함께 일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이상적인 환경을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관리자 역할을 하게 된다면 절대 그런 모습은 닮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 역할과 현실 사이에서 -
그 다짐 끝에 공모교장을 준비했고, 마침내 그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역할을 충분히 잘했는지 단정 짓기는 어렵다. 나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구성원들이 나를 어떻게 느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지 못하는 모습을 품고 있다. 직원들이 불편함을 느꼈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교직 말년에야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 체면의 무게를 인정하다 -
출세와 성공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도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에는 단단한 갑옷처럼 느껴졌지만, 세월 앞에서는 쉽게 금이 갔다. 결국 그 모든 외피는 퇴직과 함께 벗겨졌고, 남은 것은 직함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교사와 교장이라는 역할 속에서 쌓여온 체면과 자존감은 퇴직 이후에도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았다. 다른 일을 시작하는 데 망설였던 이유도 그 체면과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게 된다.
- 체면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 -
〈김부장〉속 주인공이 세차장과 대리운전을 하며 체면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만큼 용기 있는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며 나의 틀 안에 머물렀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행복이 오더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에 유난히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 대사는 나에게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내려놓지 못한 채 살아왔을까.
- 제도 보다 먼저 서야 하는 것은 양심 -
비록 낭만적이고 시대와 어긋난 꼰대였지만, 김부장은 정리해고의 칼날 앞에서 먼저 사직서를 내며
자신의 자리보다 사람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또한 백상무와의 부당한 거래를 거절함으로써
‘명예’가 성공이 아니라 버릴 것을 선택하는 용기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꼰대였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올바른 사람이었던 그는, 요란하지 않은 선택들로 오히려 더 고운 빛을 품은 삶을 남겼다.
이제 작은 실험을 해보려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낡은 표지를 보수하고,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해볼 생각이다. 직함도, 경력도, 과거의 성취도 필요 없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경험을 통해, 과연 체면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지 확인해보려 한다. 정말로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행복이 찾아오는지, 그 답을 조금 늦게라도 배워보고 싶다.
대문사진 설명: 진주시립서부도서관이다. 시니어 클럽에서 주관하는 노인 역활활용 사업 도서관 봉사활동 부문에 지원하였다. 그리고 도서관 분위기를 파악하기위해 진주 연암도서관과 시립도서관을 방문해보았다. 평일 인데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집중하고 있었다. 지적호기심으로 도서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약간은 놀라웠다. 대출과 반납의 과정을 익히기 위해 도서대출증도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련 서적도 대출하였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여있는 곳, 사람들의 생각들이 쌓여 있는 곳, 이 곳은 영혼과 사유가 넘치는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진 하루였다. 그런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2월 1일을 상상을 하면서 내 마음을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