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박물관 달항아리를 보면서 [ 디카시 034 ]
가만히 돌이켜보면,
허점 투성이었던 내 인생,
결함 많은 삶의 발자취,
끝없이 경쟁하던 지난 날들.
그 모든 시간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피할 수 없었던 필연의 걸음들이었다.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도
고요한 품위를 잃지 않는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문득 마음이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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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를 보면
비뚤어진 선마저 고요한 넉넉함을 품어
완벽하지 않은 나의 하루도
이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떼쓰지 않으며
남과 겨루어 더 빛나려는 마음도 없다.
비교의 자리에 서지 않아도
이미 자기 색으로 충만한 존재,
있는 그 모습 그대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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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거기 놓여 있을 뿐인데
조용한 힘이 생겨난다.
이방인의 눈을 통해 더 또렷해진
한국적인 미(美)의 얼굴이
우리 안에도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조용히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늘 스스로를 보기 전에
먼저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
우리의 모습을 알아차린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 Art as Therapy(영혼의 미술관)에서 달항아리를 여러 서구의 예술작품과 함께 소개하며, 이 항아리의 미학을 높이 평가했다.
삶은 정확할 필요가 없고, 균형은 맞추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일 수 있으며, 흠은 결함이 아니라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그래서 달항아리는 “아름답기 위해 애쓰지 않는 아름다움”, “성취보다 수용이 먼저인 삶”의 상징으로 잠시 놓인다.
예전에는 달항아리에 대한 이런 찬사가 그저 말로만 들릴 뿐, 가슴 깊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예순 하고도 두 해를 해를 넘기고, 높은 파도와 험한 산을 차례로 건너온 뒤에야 그 말들이 얼마나 절실한 깊이였는지 비로소 알 것만 같다.
국립박물관 한가운데서 오랫동안 멍하니 달항아리를 바라보았다. 어떤 꾸밈도 없이, 고요한 넉넉함으로 모든 허물을 감싸안는 듯한 그 자태 앞에서 문득 마음이 크게 위로받았다.
퇴직 후 친구 부부와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막상 오랜 시간을 길게 여행을 함께 보내보니 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길에는 사소한 이해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조금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조금 손해를 보게 되고, 그런 순간마다 사람의 성품과 마음결이 드러난다. 여행을 마친 뒤 나는 그 친구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달항아리 앞에 서 있으니 그때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였다. 결함이 있었던 것은 그 친구만이 아니었고, 부족함이 있었던 것도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 항아리의 비뚤어진 곡선처럼, 나 또한 완전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조용히,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이 항아리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