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의 16배 서울 즐기기

행복은 심각한 얼굴을 한 천사이다. -모딜리아니-

by 올제

- 시골쥐가 서울을 즐기는 법 -


시골쥐가 서울에 가는 일은 늘 쉽지 않다. 버스표 하나 끊는 일보다 마음을 먹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니 어렵게 올라간 서울에서는 괜히 빈손으로 내려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즐거운 기억 하나쯤은 반드시 챙겨 와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서울행에는 늘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다. 아무 이유 없이 가기엔 서울은 시골쥐에게 여전히 조금 낯선 도시다. 아들부부와 손자 얼굴을 보기 위해 일주일 서울을 방문하였다.


지난번 서울에서는 도보해설여행을 했다. 걷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고,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서울이라는 도시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발바닥으로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방향을 틀었다. 더 이상 오래 걷지 않아도 되는 여행, 대신 오래 바라보는 여행을 선택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그 핑계가 되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배수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장소나 이벤트가 있으면 두 배쯤 즐거워진다. 날씨까지 좋으면 네 배쯤은 쉽게 넘는다. 여기에 해설이나 도슨트가 붙으면, 아는 만큼 보이니 여덟 배쯤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가족과 함께 나눈다면, 즐거움은 열여섯 배가 된다. 이쯤 되면 여행이 아니라 작은 축제다.


서울 어반스케치.jpg


- 시골쥐, 서울을 탐하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진품을 보았다. 손때 묻은 종이 위의 기록이었다. 전쟁 한복판에서도 하루를 정리하듯 글을 남긴 사람 앞에서 괜히 숨을 고르게 된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따라 걸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 난중일기 원본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고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큰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이 신념은 언제나 진리이다. >


아들은 말한다. 이제 시골쥐 흉내는 그만 내고,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참 쉬운 말이다. 60년 넘게 지방에서 살아온 삶을, 쉽게 접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퇴직 후 자연과 함께하며 느린 시간에 길들여진 몸이 서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진다.


그럼에도 서울은 문화생활 앞에서는 참으로 너그러운 도시다. 특히 곧 다가올 만 65세 이상에게 주어지는 할인 혜택은, 나이 듦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라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진다. 나이 들어서 좋을 게 뭐 있나 싶다가도, 전시장 매표소 앞에서는 생각이 달라진다. 12월에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전시가 열린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은근히 소질도 있다고 믿어온 나에게 이런 환경은 꽤 설득력이 있다. 시골에서는 마음을 먹어도 쉽지 않은 일들이, 서울에서는 일정표에 적는 일로 끝난다.


물론 살아보면 현실은 또 다를 것이다. 집값, 사람, 소음, 속도. 모르는 척할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올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진학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던 그 고등학생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꿈이 아니라, 가능성과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골쥐가 서울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시간은 두고 차분히 생각해 볼 일이다.

<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 65점이 전시되었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르네상스에서부터 인상주의까지 600년의 그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이다. 체념하는 듯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결박되어 있는 양은 예수님이자 우리 자신 인간의 모습인 듯하다. >


- 서울쥐가 된다면 가보고 싶은 미술관을 정리해 본다. -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미술전시회 그리고 가 보고 싶은 미술관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아고 박물관 소장품>

∙ 예술의 전당: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소장품: 세잔, 르누아르>


∙ 타데우스 로팍: <호안 미로 조각전>

∙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마크 브래드포드>

∙ 리움미술관: <이불작가전>


∙ 노원구문화예술센터: <인상파, 그 찬란한 순간들: 마네, 르누아르, 고흐에서 세잔>

∙ 국제갤러리 K1 K2 K3 (삼청동) : 장파 <고어데코>

∙ 디스위켄드룸 갤러리갤러리 바톤: <리너스반 데 벨데>

∙ 고양시립아림미술관: < 마르크 샤갈전 >


∙ 아트선재센터: <아드리안 비야르호하스: 적군의 언어> 설치작품

∙ 토탈미술관: <아야코 록카쿠>

∙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경매프리뷰 겸 무료전시


서울시립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 간송미술관 /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 호암미술관 / 석파정 미술관 / 호림박물관 / 금호미술관 /디뮤지엄 / 롯데뮤지엄 / 송은 등 등




표지사진의 주인공은 모딜리아니이다.

그는 작품 속 인물에 눈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눈은 그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자리이기에,

그 영혼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눈을 그려 넣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닮은 얼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그리고 싶다.”


그의 그림 오른쪽 어깨쯤에는 모딜리아니의 지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서른다섯에 요절한 이 작가는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심한 실수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나면 미술은 한층 재미있어진다.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이 작품을 보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가만히 관찰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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