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든 神曲(지옥편) -
가끔씩 시장에 가보면 추운 겨울에도 얼마 안 남는 수익을 위해 농산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추운 겨울에 주차장관리를 하는 할아버지도 가끔 본다. 또한 브런치 스토리에 올라온 사연 중에서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분들의 글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면 내가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어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다. 인간의 본성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더 가지고 싶고 욕망은 끝이 없어 보인다.
단테의 신곡(神曲)이 생각난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단테의 신곡은 주인공이 지옥과 천국 그리고 연옥을 스승의 안내에 따라 순례를 하게 되며 얻은 통찰(通察)을 전해주는 대서사시이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이 9단계로 나뉜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림보, 애욕 지옥, 탐욕 지옥, 낭비 지옥, 분노 지옥, 이단 지옥, 폭력 지옥, 사기 지옥, 배신 지옥으로 나뉘어 있다.
- 나의 神曲(지옥편)을 만들어 60여 년간 살아온 인생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
살인, 강도, 강간, 사기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형법적으로 아주 사악한 범죄에 해당되는 죄악은 제외하고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을 근거와 나의 삶을 성찰하는 의미로 나의 신곡을 만들어 보았다. 다시 산다면 이런 죄악을 범하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야겠다. 그러면 후회 없는 노년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단테가 살던 중세시대(1308~1321) 시대와 많은 차이가 나고, 사람마다 주관적인 입장으로 세상을 바로 보니 단테의 지옥과는 다르게 나는 나의 지옥을 이렇게 9단계로 규정해 보았다.
제1층: 종교를 가지지 않은 죄
제2층: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죄
제3층: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
제4층: 식탐, 주탐을 절제하지 못한 죄
제5층: 자녀에게 진실한 애정을 주지 않은 죄
제6층: 학교에서 동급생을 괴롭힌 죄
제7층: 거짓말을 한 죄
제8층: 인생을 낭비한 죄
제9층: 나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 죄
<지하 1층 : 종교를 가지지 않은 죄 >
나의 부모님은 불교신자이셨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천주교신자이다. 그런데 나는 특정한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종교를 가질 기회가 2~3번 있었지만 일요일에 종교시설에 가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사찰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특정종교를 가지지 않은 것 같다. 종교는 마음의 안식과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 같다.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의 성모 마리아이시고, 하찮은 말씀일지라도 어머니 말씀이 나의 진리이자 교리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도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성당이나 절에 가서 신앙심을 가져보고 싶다.
<지하 2층: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죄 >
건강관리를 소홀이 한 죄를 나에게 묻는 다면 나는 분명 지옥에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눈이 아주 나쁘다. 그리고 귀도 나빠 이명과 난청이 있다. 위염에 시달리는 나는 위장도 나빠 아침이면 속이 쓰리다. 최근에는 허리와 무릎도 욱신거리다. 내 건강은 나이에 비해 훨씬 상황이 나쁘다. 노화가 빨리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평소 생활습관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니 모두 나의 탓이다.
컴퓨터를 오래 보는 습관, 저녁에 야식을 먹는 습관, 너무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 습관 등으로 내 몸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독서와 컴퓨터로 브런치 글쓰기는 나의 가장 큰 취미이고 퇴직 이후 삶의 원동력이지만 나의 가장 큰 건강의 적이다. 나의 건강을 생각하면 면 브런치 스토리 글쓰기와 독서는 나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지하 3층: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 >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누구나 다 해당하는 것 같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자식은 부모만큼 사랑을 주지 못한다. 아들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와 돌아가셨을 때이다. 나의 선친은 건강하셨지만 갑자기 79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뇌경색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각종 검사를 받게 되고 병원에서 담도암이 발견되어 수술 후유증으로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아버지와는 성격적으로 잘 맞지 않아 잦은 트러블이 생겼다. 어릴 시절 내가 기대하는 아버지는 사회적으로는 명성이 높고, 자녀에게는 권위가 있으면서도 다정하고, 가정적으로는 주말 드라마 같은 화합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슈퍼맨이 되어 달라고 기대를 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 그런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 지하 4층: 식탐, 주탐을 절제하지 못한 죄 >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아 제대로 맛난 음식을 많이 먹어보지 못한 나는 식탐이 많았다. 야식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고 식당에서는 남은 음식이 아까워 꼭 다 비워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편이다. 이런 습관은 왜소한 체격이지만 마른 비만을 생기게 하였고 과식은 내 건강을 위해 버려야 할 가장 나쁜 습관이 되고 말았다. 또한 나는 젊은 시절에 술을 좋아해서 과음을 하였다.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져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속에 인싸가 되고 싶어 술을 함께 즐겼다. 과식과 과음을 하면서도 마라톤과 등산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여 최악의 건강상태는 면하였지만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중 하나는 젊은 시절 과음한 일이다.
<지사 5층: 자녀에게 진실한 애정을 주지 않은 죄 >
자녀들이 성공한 집안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피카소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손흥민의 아버지가 그러했다. 요즘은 부모 모두가 나서 자녀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교육을 시키지만 예전에는 자녀교육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1학년까지는 아들, 딸에게 자녀교육에 대해 관심을 쏟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중학교 입학하기까지 같이 여행도 다니고 도서관도 다니면서 서로 대화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사교육에 더 집중한 것 같다. 다행히 학원 생활은 자녀들의 능력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드라마 속에 나오는 가족처럼 함께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 자녀에게 진실한 애정을 주지 않는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 지하 6층: 학교에서 동급생을 괴롭힌 죄 >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나는 특정한 학생의 놀림감이었고 그 친구는 이유 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는 '데미안'의 코로머처럼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말씀을 드릴 수도 없었고 친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웠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파괴되었고 나는 학업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싱클레어 같은 존재였고 나에게는 데미안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고2시절을 유령같이 살았다. 나의 친한 친구는 이 사실을 아는 듯하였지만 나를 괴롭힌 그 친구는 일진그룹에 있었기에 선 듯 나서기가 두려웠을 수도 있었다. 나는 스스로 해결하였다. 나는 체격은 왜소하였지만 초등학교 운동을 한 경험이 있어 순발력이나 체력은 이 친구보다 더 뛰어나다고 믿고 1:1 대결을 신청하였다. 우리는 옥상에서 한 바탕 싸움을 벌였고 나의 예상대로 내가 일방적으로 게임에서 이겼다.
이 일 이후 일진 친구들의 보복이 두려워 졸업할 때까지 불안한 고교시절을 보냈다. 당시 학교폭력은 ‘더 글로리’ 드라마에서 처럼 잔인하지는 않았지만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들은 마땅히 지옥으로 가야 한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불안에 떨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반면 나는 체격이 작아서 누구를 괴롭힐 인물은 못되었다.
<지하 7층: 거짓말을 한 죄 >
거짓말을 한 죄는 누구나 다 저지르는 죄인데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느냐가 문제 일 것 같다. 내가 했던 수많은 거짓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거짓말이라 하면 공모교장시절 야구감독과 했던 약속인데 지키지 못해 결국 거짓말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나의 마지막 근무지는 운동부가 있던 학교의 관리자로 일반학생과 야구부학생이 각각 절반씩 구성되는 학교였는데 일반학생관리도 중요하지만 운동부인 야구부의 학생관리가 더 신경 쓰였다.
야구부 감독에게 나는 이렇게 약속을 하였다.
“내가 학교에 있는 4년 동안 최선의 지원을 다해줄 터이니 감독님도 나를 믿고 열심히 지도하여 4년 내에 전국체전에서 우승 한번 해보도록 노력해 주세요.”
야구부 감독과 이런 굳은 약조를 하였을 때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니었고 두 사람이 도원결의하듯 목숨 걸고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였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 사태로 숱한 민원을 극복하지 못하고 명퇴하여 지키지 못할 거짓말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지하 8층: 인생을 낭비한 죄 >
인생을 낭비한 죄이다. 이 항목에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다. 누구는 인생을 느긋하게 힐링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라 할 수 있고 누군가에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의 기준으로 보는 신곡(神曲)이어서 할 일이 없이 빈둥빈둥 보내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쉬는 것과 낭비하는 것은 다르다. 바쁘게만 움직인다고 열심히 산 것은 아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행동 중에서 중독(中毒)이 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제일 큰 낭비이다. 도박, 마약, 휴대폰, 주식, 게임 등에 빠져서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못 보고 놓치는 것이 제일 큰 낭비이다. 중독이 되면 자신의 의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독이 되고 마는 것은 처음부터 접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에서 술과 담배, 그리고 커피는 한 모금도 한 방울도 입술에 대지 않을 것이다.
< 지하 9층: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 죄 >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 재능과 흥미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다. 자신을 잘 관찰해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많이 보고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 부모의 도움이 있다면 자신이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부모도 자녀의 재능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살다 보면 3번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찾아오는 기회를 잘 살려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길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희미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천의지가 약해서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 경우이다. 모든 사람들이 최고가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지도 않고 낭비해 버리는 인생이야 말로 제일 큰 죄악이다.
실로 이미 지옥으로 가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 같다. 노예제도로 노예들을 잡아다가 미국땅에 팔아먹은 노예상과 노예들을 학대하고 고통스럽게 일을 시킨 노예주인들 그리고 남미원주민들을 학살한 스페인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나 푸틴의 죄에 비하면 위의 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지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플라스틱과 비닐로 온 세상을 더럽히고, 닭과 돼지, 소를 가축으로 만들어 식용으로 이용하고 자연이 준 생명의 질서를 깨뜨려 생명연장의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며 AI를 만들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고 하면서 어떻게 천국으로 갈 려고 할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면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은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 보다 더 위험한 한 존재가 또 있을까?" (588page)
그냥 사는 동안 이곳이 천국이라 여기고 마지막 한숨까지 즐겁게 살아가리라...
P.S.: 사진설명_비행기에서 바라본 운해는 '하늘나라'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멋졌다. 우리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과연 '지옥'은 어떤 모습일까?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며 명화로 읽는 단테의 신곡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