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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삼생천년" 아들의 결혼식 축하인사"

by 올제


< 세 번 태어나도 끊기지 않을 깊은 인연이 되길 바라면서... >


요즘은 예전과 달리 결혼식에 주례(主禮)를 생략하거나 가족의 대표가 자녀에게 축하인사와 덕담의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결혼했던 약 35년 전에는 주례선생님이 결혼식장의 주요 인물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경남의 대표 문인이자 개천예술제를 창시하신 파성 설창수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자 했고 나는 내가 존경하는 대학의 은사 이도수 교수님을 주례로 모시고자 했다. 아버지의 정신적인 스승이신 파성 선생님께서는 나의 스승님보다 한창 연세가 많은 분이었고 명망이 아주 높은 신 분이었다.


주례선생님 선정을 두고 아버지가 추천하는 사람과 내가 하고 싶은 사람이 달라 다소 의견차이를 보였지만 결국 나의 주장을 받아들여 아버지는 양보하셨다.

파성 선생님께서는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참여하셨다. 그러자 나의 은사님께서 무척 당황하고 놀라셨다고 한다. 경남에서 존경받은 대표적인 선비정신의 소유자께서 하객으로 자리를 잡고 계시니 그분 앞에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떨렸다고 한다.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달변이신 교수님은 정충들을 휘어잡는 분위기였다.


파성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의미로 삼생천년(三生千年)이란 휘호를 지어주시고 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삼생천년이란 天生緣分(천생연분)이란 용어에서 파성선생님의 깊은 뜻을 담은 용어로 “세 번을 태어나도 끊어지지 않을 깊은 인연”을 말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받은 삼생천년이란 휘호는 장마철에 이삿짐센터에서 보관을 잘 못해서 훼손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주례선생님 선정을 양보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든다. 지금생각하니 아버지께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많이 서운했을 것 같다. "아버지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실 분은 파성 선생님이 아니라 나의 교수님이었다.


나는 교직 생활 35년 동안 결혼식 주례를 서 달라고 부탁은 여러 번 받아보았지만 실제로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서보지는 못했다. 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원한다면 결혼식에 축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 마음을 담은 축사를 미리 적어본다.


< 결혼당시 내가 받은 삼생천년과 꼭 같은 휘호를 사립 박물관에서 발견하였다. 파성 선생님 특유의 힘차고 역동적인 필체는 서부경남의 대표적인 서체 중 하나로 꼽힌다. >




< 믿음직스러운 '아들', 사랑스러운 '며느리'에게... >

“아빠 저기 별들을 좀 보셔요, 저 별이 북두칠성이에요. 그리고 그 옆은 오리온자리입니다. 사냥을 나서는 오리온을 형상화하여 별 세 개를 일렬로 세웠어요.”

나도 한마디 한다.

“그래~~, 아들이 아니었으면 북두칠성이 밤하늘에 존재하는 사실을 잊고 살았을 것인데, 고마워 아들~” 나는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이 고3 시절인 2010년 1월 밤늦은 12시 30분에 아들은 학원에서 돌아오고 나는 마중을 나간다. 몹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중 나간 나와는 다르게 아들은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시기'여서 그러했다.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역경과 고난도 즐거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 인생에서 아들과 함께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인생이란 여정에 반려자가 된 두 사람에게도 지금은 가장 설레고 희망찬 시간일 것이다.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줄 두 사람에게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이 시간 무한한 축하의 인사를 보내면서 3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1. 인생이란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가 균형에 맞아야 행복에 가까워진다.

인생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들이 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요건으로 건강, 경제력, 건전한 취미, 가족과 친구, 감사하는 마음, 배우려는 의지이다.

균형을 이루는 삶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마음이 가는 대로보다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일과 휴식의 균형, 몸과 마음의 균형, 가족과 친구의 균형, 돈과 건강의 균형을 한 곳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삶이 무너지게 된다.

일과 삶을 균형 있게 디자인해야 한다.


2. 가훈으로 정한 和, 勤, 儉, 讀을 늘 기억하라.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억울한 당파싸움의 피해자가 되어 유배 생활하는 도중, 자식에게 당부의 편지글을 보냈다. 그중 4글자를 골라 우리 집 가훈으로 정하였으니 명심해 주길 바란다.

和合(화합)하면 원망이 없고 질서가 있으며,
勤勉(근면)하면 흠이 없고 번성할 것이며,
儉素(검소)하면 후회가 없고 복이 찾아올 것이며,
讀書(독서)하면 우매함이 없고 지혜가 있을 것이다.

이는 가정생활의 네 가지 근본이다. 이를 합하여 ‘거가사본(居家四本)’이라 칭하고 책상 위에 놓아두고 항상 읽는다면 심신에 크게 유익할 것이다. (화근검독 책상명패를 선물한다.)


3.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여야 한다.

엄마, 아빠도 35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여전히 다르더구나.

클래식과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하는 엄마와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는 아빠의 간극은 줄어들지 않더라. 타고난 성격과 입맛은 쉬이 변하지 않으니 서로의 간격을 줄이는 노력과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 화합할 것이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큰 싸움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큰 소리를 내었다면 다른 사람은 차분히 기다려 솔직한 심경을 말해주면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 철수에게
"너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내 아들로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참으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너의 존재 하나로 나는 매일 감사하고,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란다. 내 아들로 태어나 주어서 … 정말 고맙고, 사랑해. 내 아들 철수 때문에 30여 년의 시간을 기뻐하면서 감동하면서 살게 해 주어서 고맙다."

며느리 영희에게
"우리 가족의 소중한 인연으로 와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이제부터는 영희도 내 딸처럼 아끼고 사랑할게. 낯선 환경에서 마음 쓰일 일도 많겠지만, 언제나 당신 편이 되어줄게.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자. 영희가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든든하고 행복하단다."

살다 보면 사는 게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하루하루 쌓이면 그게 인생인 것이다.
사랑한다. 부디 영희와 좋은 가정 꾸려 잘 살아라.


결혼식덕담원고001-horz.jpg < 실제 결혼식에 사용한 덕담원고는 4분정도로 맞추었다. 붉은 색 글씨는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었고 여러번 읽어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하였다. >
< 자녀를 결혼시켜 본 부모님의 심정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우리의 부모들도 자녀가 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백년대계 혼사를 준비했는가 보다. >


< 할머니가 보내는 축시 >


두 사람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 아파치 인디언의 결혼 축시 -


표지사진 설명: 아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결혼을 승낙해 달라고 한다. 승낙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결혼을 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은 비혼주의도 많고 출산율도 낮아 결혼하고 아이 낳아 평범하게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인간은 고통의 바다에 사는 물고기 같은 존재"라고 했다. 고통스러운 힘든 날도 슬기롭게 잘 견디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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