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작별하지 않는다. >
제주도 눈꽃, 동백꽃 여행을 다녀온 뒤 제주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4·3 사건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4·3 사건의 자료를 찾아 공부해 보았고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채식주의자』가 한강을 국내외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서 부각한 데뷔작이라면 본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발표된 14년 작 『소년이 온다』와 함께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세계 문학계의 거장으로 인정받게끔 만든 진정한 대표작이라고 한다.
제주의 강한 바람이 집어삼키던 황무지를 정성과 집념으로 울창한 동백숲으로 일군 현맹춘과 한강 작가는 내면적으로 닮은 것 같다. 제주의 눈보라를 뚫고 인선의 목공방을 찾아가는 길은 고통과 고난의 길이지만 인선의 새 ‘아마’를 살리기 위한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강작가에게 현맹춘 할머니는 자신의 정신적 롤모델인 것이다.
지난달 제주 폭설로 한라산 등산을 하지 못하고 한라산 중산간지역의 돌오름길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헤집고 보림농장 삼거리로 가는 눈길의 기억이 생생하여 경하가 인선의 목공방을 찾아가는 길은 내가 얼마 전 걸었던 그 길이라고 착각하며 읽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수많은 이별을 한다. 우리의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만남이 없는 헤어짐은 없고 헤어짐이 있어야 만남도 있다. 그래서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섭리이며 불가분의 관계이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헤어짐은 결심이라고 한다. 헤어짐과 이별·작별은 다른 문제이다. 내가 원해서 생긴 결과가 헤어짐이라고 하면 나의 의도와 반하여 헤어지는 것은 이별과 작별이다. 한강 작가는 무거운 감정의 이별이란 용어보다 가벼운 감정의 작별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작별이란 다시 만날 것을 전제로 한 일시적은 헤어짐이어서 이별과는 다르다. 그런데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마도 ‘작별하지 않는다’였던 것은 그날의 제주도의 비극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애도를 멈추지 않고 절대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이다.
계속해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버리기에 삼 분에 한 번씩 봉합된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야 하는 인선을 작품 속에 주요한 인물로 등장시켜 우리가 제주도의 비극에 대해 기억하지 않고 고통받지 않는다면 역사의 한 부분이 죽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반대한민국 정서를 자아낼 우려가 큰 한강의 소설은 국내외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제외하고 4.3 사건으로 인해 아픔을 당한 제주도민들의 마음만 헤아려보기로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근본인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아서」라는 주제의 정호승 작가 강연과도 일맥상통하였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빠의 행적을 찾았던 인선의 엄마 정심, 아픈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제주로 내려갔던 인선, 인선의 부탁으로 폭설 속에 위험천만하게 인선의 집에 있는 새를 구하러 갔던 경하의 행동이 모두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는 행동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언으로 이런 말씀은 남겼다고 한다.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 없이 고통만 남은 4·3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4·3 사건을 잊지 않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 우리 부부는 금요일마다 작별인사를 한다. >
매주 수요일 산행모임을 다니는데 수요문화대학을 다니면서 일시적으로 금요일로 변경하였다.
지난 금요일도 산행을 가기 위해 "여보 잘 다녀올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일상으로 일어나는 작별인사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지난주는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며 함안과 창녕의 경계점인 합강정과 반구정이 있는 '낙동강 바람소리길'이었다. 아침 안개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상류는 아득한 태고의 신비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금요일마다 혼자 나서는 것이 아내에겐 좀 미안하지만, 은퇴한 나는 사회생활도 필요해 타인과 어울리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리고 수요일은 부부가 함께 창원수요문화대학의 강연회를 다닌다. 그 첫 번째 강연으로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아서」를 듣고 왔다.
정호승 시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사랑’과 ‘고통’을 꼽았다.
그는 “사랑은 고통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며 “사랑하지 않는 인생이라면 고통도 없을 것이나 인생은 사랑과 고통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빈민의 아버지인 아베 피에르는 “삶이란 사랑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라고 하면서 평생 가난한 이웃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나는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려 노력하고자 한다. 물론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얼마간이란 시간을 '직박구리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가는 시간'에 비유하였다. 나에게 주어진 너무나 짧은 자유시간이 인생이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는 길에 하는 인사말 ”여보 다녀올게~“라는 말을 매일 마지막 인사인 것처럼 정성스럽게 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는 4·3 사건의 희생자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 등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도 많았다.
최근에 김하늘 양은 “학교 잘 다녀올게요~”라는 인사말만 남기고 우울증을 앓던 선생님으로부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사건도 있었고, "여행 잘 다녀올게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무안공항에서 비행기사고로 희생당한 억울한 죽음과 서울 시청역 교차로 차량 돌진 사고로 날벼락을 맞은 사망사고, 세월호를 타기 전에 부모님에게 "수학여행 잘 다녀올게요~"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한 수많은 학생들, 이태원 참사에서 그리고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너무나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다.
항상 대문을 나서는 날에는 오늘의 인사말이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인사하고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스티븐 호킹이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면서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것은 21세였다. 많은 이들이 그가 2년 이상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살아남았고 자신을 예외로 만들었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박사의 몸과 빛나는 지성은 50년 동안 빛을 잃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호킹 박사는 인류에게 큰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론 물리학과 천체 물리학과 같은 분야에 그가 남긴 업적은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는 세계적 유산이 되었다.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제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아직 살아있다는 거예요.”
나는 금요일마다 부인과 작별을 한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아픔과는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표지사진 설명: 아침 안개를 머금은 낙동강은 제주 중산간 지방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연상시킬 만큼 몽환적 분위기였고 한강 작가의 주인공 경하가 매일 밤 악몽을 꾸었던 배경장소 같은 느낌을 받은 곳이었다. 낙동강 바람소리길은 누구나 걷기 쉬운 편안한 둘레길이니 봄날 한번 걸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