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도 모르고 약도 듣지 않는 신병
나는 어릴 때부터 병으로 고생했다. 폐렴에 장염, 뇌수막염, 편도염, 가와사키병 등 너무 많이 아팠다. 진단명이 나온 것만 적었고 진단조차 "상세불명의~, 원인불명의~"로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너무너무 자주 아프다 보니 부모님은 매일같이 싸우셨다. 동네 병원에서 안 되니 더 큰 병원, 더 큰 병원을 찾아다니고 부모님은 지치셨던 것 같다.
주로 고열에 시달렸다. 매일같이 40도까지 치솟던 열은 해열제를 맞아도 그 때 뿐이었다. 어린 시절 어렴풋한 내 기억으로는 몇 달 동안 열이 그렇게 올랐던 것 같다. 학교는 당연히 다닐 수 없었고 병원에 입원하거나 집에서 누워 쉬는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원인 모를 소화장애로 고통받기도 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할머니께서 민간신앙으로 내 소화장애를 낫게 해주신 것이었다.
뭘 먹어도 토하고 병원약도 소용없어 밥을 못 먹은지 3일이 넘어가자 할머니가 집으로 찾아오셨다. 객구(객귀 : 집이 아닌 밖이나 객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가 들렸다고 하시며 나에게 문지방을 베고 누우라 하셨다. 밥그릇에 쌀을 가득 담고 흰 천을 덮은 뒤 뒤집어 잡으시고 그릇으로 내 배를 문지르셨다. 뭐라고 중얼거리셨는데 그것까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곤 다시 그릇을 바로해서 천을 걷으니 가득 담았던 쌀이 푹 파져있었다. 그리곤 내게 칼을 물리시고 콩과 물을 먹이셨다. 이후 난 잠들어서 기억은 없지만 할머니께선 문 밖에서 칼을 던지셨다고 들었고 칼날이 밖을 향하자 객구가 나갔다고 하셨다. 이 일이 있은 뒤 신기하게 소화장애가 나았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아팠다. 그런데 10살이 넘어가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 신기하게 아픈 것이 딱 멈췄다. 그 때부터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었고 이런 날들이 20살까지는 이어졌다.
19살부터 이상하다고 느낀 건 신체적인 아픔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중증 우울증을 진단받고 약물 치료를 권고받았으나 아버지는 보수적이라 약물 치료를 거부하셨다. 고등학생 때부터 예지몽을 꾸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자 영음(영의 소리)이 들리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 우울증에 대한 약물 치료가 시작되었고 2024년 3월까지 약물치료를 받았다. 우울증 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공황에 시달렸다.
대학병원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상담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했으나 효과는 없었고 여러 병원과 상담 센터를 전전하며 다녔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몸도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탈이 나는 위장은 과민성장증후군이라 이름붙여졌고 틈만 나면 아프던 머리는 상세불명의 편두통으로 이름붙여졌다. 그렇게 약을 달고 사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서러웠다. 왜 나는 이렇게 아파야하는가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으로 온갖 질문들이 이어졌다. 왜 약이 듣지 않을까, 뭐가 문제인걸까, 고민하는 날들도 늘어갔다.
이렇게 버티던 중 프롤로그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상황은 바뀌었다. 이젠 나를 넘어서 나와 친한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