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할머니께 혼나다

너무너무너무 무서웠다

by Aria

정형외과에서 깁스를 4주 동안하고 운동은 한 달을 쉬라고 했다.

터덜터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 서러워 울었다. 집에 가서 신어머니께 발목을 다쳤다고 문자로 말씀드렸더니 곧 전화가 왔다. 갑자기 꿈을 무슨 꿈을 꿨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지난밤 꾼 꿈을 말씀드렸다.


꿈속에서 나는 숨을 곳을 찾아 도망치고 있었다. 깨끗한 대도시가 배경이었는데 덩치가 큰, 마치 거인 같은 하얀 실루엣 여려 명이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내가 숨을 곳이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결국 내 머리만 숨겼다.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할 때 자신의 머리만 숨고 몸은 다 숨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숨었다. 이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너무 다급했다.


이 꿈을 말씀드리니 다시 한번 내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하셨다. 월요일에 찾아뵙기로 했는데 일요일이라도 오라고 하셨다. 나는 당장은 다리가 너무 아파 원래대로 월요일에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힘겹게 도착한 곳에서 신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곧장 법당으로 들어간 나는 신할머니를 뵈었다. 신할머니는 신어머니께 내림굿을 해주신 분으로 신어머니께 신어머니가 되셔 나에겐 신할머니가 되신 분이다.

앉아서 내게 이름을 물으시고 생년월일을 물으셨다. 그리곤 펜으로 책상을 탁 치시며 말씀하셨다. 원래 사주는 안 보시지만 왠지 봐야 할 것 같아서 내 사주를 잠깐 보셨다고. 보니 내 사주엔 신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총 4명의 무속인에게서 신점을 봤다. 딱 2대 2로 의견이 갈렸다. 신어머니를 포함한 한 분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고 다른 두 분은 신병이 아니고 그냥 조상환난이라고 하셨다. 신내림을 받아야 해서 아픈 것이 아니라고. 그냥 기도하고 부적 쓰고 굿을 하면 나을 거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내게 신내림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신 분들은 신점을 본 것이 아니라 내 사주만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 태몽을 언급하셨다. 나는 태몽부터 제자꿈이고 나는 용왕께서 점지해 주신 아이라고 하셨다. 신할머니는 책상에서 일어나 옆에 있던 북을 가지고 법당을 바라보며 앉으셨다. 나를 신께 올려 여쭤보겠다고, 꼭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여쭤보겠다고 하셨다.


신할머니께서 북을 치시며 나에 대해 읊으셨다. 북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펑펑 흘렀고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렇게 추운 것이 아닌데도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너무 떨어 신어머니는 내게 숄을 덮어주셨다. 그래도 떨림이 멈추지 않으니 신할머니께서 신어머니께 뭐라고 하셨고 길고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가져오신 신어머니는 내 어깨와 등 위에서 그 종이를 죽 찢으셨다. 신기하게 종이를 찢으니 떨림이 멎었다.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북을 치시던 신할머니는 갑자기 멈추시고 내게 부모 어느 쪽이든 무당이 있지 않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몰라서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 질문은 신어머니도 내게 하셨던 질문이었다. 이어 계속 북을 치시다 끝났는지 멈추셨다. 한숨을 푹 쉬시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피할 수 없다고. 이어 나에게 무섭게(그리 무섭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는데 그냥 내 느낌으로는 너무너무 무서웠다.) 말씀하셨다.


"이전부터 그렇게 너를 쳤는데 네가 고집부린다고 이게 될 일인 줄 알았냐."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애써 모른 척했던 내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확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펑펑 소리 내 아이처럼 울었다.


신할머니께서는 왜 내가 다른 무당 중 신어머니에게 왔는지 알겠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신할머니도 신어머니도 장군신을 받으신 분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두 분 모두 내게 어떤 신들이 내리셨는지 알려주지 않으셨다. 이건 내가 나중에 산에 가서 내가 신을 받을 때 내 입으로 뱉어야 내 의심이 사라질 거라고 하셨다.


이후엔 나를 환영하는 식사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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