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도리란 뭘까 3편

결혼도 안 한 대학생인 내가 명절 스트레스라니!

by Aria

대학교 2학년일 때 할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내 여름방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할아버지를 간호해 드렸다. 식사와 통증관리 같은 것들. 아버지는 할아버지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효자 코스프레에 심취하신 것 같았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힘든 척, 괜찮은 척, 착한 척 오지게 내숭 떨고 집에 오면 TV나 보며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는 아버지였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5일 전 일요일. 나는 할아버지의 통증이 더 이상 집에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내일이 월요일이니 꼭 병원에 모시고 가서 뭐라도 하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알겠다 하시더니 진짜 다음날 모시고 갔더라. 그리고 병원에 가신 그날 할아버지께서는 완전히 기력을 다하셨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계시다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타지의 대학교를 재학 중이었고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금요일 수업이 마치면 기차를 타고 본가로 갔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는 날 하루 종일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물으셨다고 했다. 금요일에 내가 집에 오니까 나를 계속 기다리셨다고. 금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후 할아버지의 제사와 명절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물론 음식부터 준비까지 전부 내가 해야 했다. 아버지는 그 모든 일을 해내는 내게 고맙다고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으니까. 할머니가 잔소리는 어찌나 심하신지. 내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음식을 사서 하자고 하셨는데 할머니가 제사 음식은 정성인데 뭘 사서 하냐고 버럭 화내셨다. 그래도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럼 할머니가 하시든가요!"

라고 했다. 명절 직전까지 내가 하지 않으니 할머니는 사서 하자고 하셨다. 웃긴다. 자기도 힘들어서 못할 걸 나한테 정성을 강요하다니. 아버지도 못나서 이혼당하고 삼촌들도 인성이 쓰레기라 결혼도 못해 며느리도 없으면서 그 일을 내게 떠넘겨?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삼촌들도 얼마나 쓰레기냐면 내가 집 근처에 취업을 하게 되어 본가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너무 괴로워 독립하겠다고 하니 삼촌들이 내게 저주를 퍼부어댔다. 내가 할머니 안 모시면 누가 모시냐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삼촌들은 지금까지 할머니가 키워주신 게 있는데 그걸 내가 져버린다며 나를 매도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제발! 효도는 셀프다.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다.

아버지가 내게 해준 건 뭐가 있고 할머니가 내게 해준 건 뭐가 있는지.


아버지는 지금까지 일관된 태도로 계신다.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고 나를 헌신적으로 키워주었다고.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뭔데?"

아버지의 이 말이 내 가슴에 와서 박혔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이니까 명절이나 생신이면 용돈을 50만 원씩 챙겨드리곤 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친구분을 만나고 오셨는데 친구분 팔에 금팔찌가 번쩍번쩍하더란다. 물어보니 아들과 딸이 모아서 해줬다고 자기는 그런 거 없냐고 내게 묻더라. 나는 되려 묻고 싶었다.
당신은 내게 해준 게 뭔데.

그래도 나는 3개월 뒤 순금 10돈짜리 금팔찌를 사서 선물해 드렸다. 좋다고 받아가서 자랑하고 다니시더라. 주변 사람들은 역시 아버지가 자식들 잘 키운 보람이 있다며 떠들어댔다.


올해 2023년 설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몸이 아파서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설연휴 중 설 당일 점심때 본가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우리 집은 설 당일 오전에 제사를 지낸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내게 이건 아니라면서 자기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점심때 집에 가보려 했는데 기분이 상해서 가지 않았다.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시 전화가 와서 잠깐 보자고 하셨다.


만나서 내게 한다는 말도 참 가관이었다. 민족 대명절 설인데 집에 안 오냐고 나를 쏘아붙였다. 나는 점심때 가려고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점심때 오는 건 무슨 의미냐고 해서 내가 되물었다. 지금 아버지가 내게 화내시는 게 집에 안 와서 화를 내시는 건지, 아니면 집에 일하러 오지 않아서 그러시는 건지 물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언성을 높이며 말하셨다. 명절에 일하는 건 네가 사람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도리인데 너는 그걸 안 했다고. 나는 조곤조곤하게 반박했다. 내 친구들 중 그 누구도 그게 내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랬더니

"그럼 네 친구들은 사람이 아니네."

라고 하셨다. 내 안에 선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 친구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욕한 거야? 그러는 자기는 사람인가? 이 대화는 내 폰에 녹음되어 있다.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남자친구는 결혼 전에 한 번 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아버지 뵙는 건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결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도 웃겼다. 작년 상반기에 내게 갑자기 할머니 살아계실 때 올해 안으로 결혼을 하란다. 나는 그때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이냐 물으니 자기가 지금까지 뿌린 게 있으니 거둬야겠다며 축의금을 내게 요구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정말 치가 떨린다. 결혼도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내가 벌어서 내가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축의금은 자기가 받아가겠단다.


아버지에 대한 썰은 너무 많은데 생각나면 글로 써서 풀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가슴속에 품고 있어 봤자 내게 도움 될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글로 쓰고 풀고 아버지를 용서하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변할 것 같지는 않으니 연락은 안 할 것이다. 지금도 아버지는 내 욕을 하고 다니신다고 한다. 힘들 때 헌신해서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배신한 년이라며.


나도 이젠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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