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도 양손이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굉장히 빨리 하신 편이다. 결혼 후 다음 해에 나를 낳으셨으니.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결혼을 일찍 한 것이 인생의 한이고 후회라 하셨다.
그래. 주변 친구들은 재밌게 20대를 즐기며 노는데 자기는 가정에 묶여서 애나 키우고 앉아있으니 답답하셨겠지. 많이 힘드셨겠지.
거기다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고되게 당하셨다. 할머니가 정말 인성이 쓰레기였거든. 돈 아깝다고 세탁기도 못 쓰게 하셨고 한 밤중, 새벽이라도 할머니가 밥 차리라 하시면 자다 일어나 밥을 차려야 했다.
어느 날은 아기인 내가 울어서 어머니는 나를 안고 달래고 계셨는데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중이셨다. 프라이팬과 국이 끓어서 불을 꺼야 했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시는데 할머니가 화를 내셨다.
애새끼 울게 그냥 두고 와서 빨리 밥이나 차리라고. 빨리 밥 안 차리고 뭐 하냐고.
어머니는 매일 우셨다. 아버지는 마마보이였다. 한 번도 어머니 편을 들어주신 적이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큰삼촌이 할머니를 설득해서 분가하기로 결정되었다.
분가하고 나서도 부부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내가 유치원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신다며 누구랑 살 건지 내게 물으셨거든. 어머니는 울어서 빨개진 눈으로 집을 나가셨고 나와 아기였던 여동생은 집에 방치되었다. 나도 본 것이 있으니 동생 분유정도는 먹여줄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매일 돈 때문에 싸우셨다. 결국 이혼하셨다.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우리 삼 남매의 면접교섭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이혼하셨다. 이후는 이전의 이야기와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살림을 잘못 살아서 집이 풍비박산 났고 어머니 혼자 살겠다고 빚만 남겨놓고 집을 나갔다고 하셨다.
그렇게 11년이 지났다. 2017년 어느 날. 아버지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머니를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예전에도 종종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우리를 보여달라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면접교섭권으로 어머니에게 갑질을 해댔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나보다 키가 작으셨다. 낯설었다. 아버지가 자동차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어머니에게 폰 번호를 물어봤고 그때 번호교환을 했다. 이후 카톡으로 연락을 하다가 직접 만나 밥도 같이 먹고 그랬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에게 사건의 전말을 물어보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어머니 혼자 잘못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도 잘못해서 이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 들은 내용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종종 폭행했다. 나도 자다가 큰소리에 깨서 문틈으로 봤더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계셨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께 피가 베이도록 맞았었다. 때리는 빈도는 어머니가 더 잦았지만 아버지는 한 번 때리면 정말 내가 쓰러지도록 때리셨다.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를 어떻게든 학원에 보내고 싶어 하셨지만 아버지는 돈 아깝다며 학원을 자꾸 끊어버리려 했다는 점.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으셨고 아버지 혼자 뒷주머니를 챙겼다는 점.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대출을 받으셨고 이혼할 당시 각자의 빚은 각자가 가지고 헤어져서 어머니의 빚은 아버지에게 떠넘긴 게 아니라는 점.
이혼 후 어머니는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셨다는 점.
우리가 보고 싶어 아버지에게 계속 연락하셨지만 아버지가 보여주지 않아 먼발치에서 우리를 몰래 지켜봤다는 점.
아버지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당연히 우리도 잘 살 줄 아셨다는 점.
아버지에게 우리 안부 물으려 전화하면 맨날 우리에게 잘해준 걸 자랑하듯 말해서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다는 점.
나는 어머니에게 다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어머니는 우셨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 줄 몰랐다고 하시며.
그렇게 해묵은 감정과 숨겨진 사연을 털어놓으며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되는가 했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