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수의사 9편
“삐약삐약” “꼬끼오”
“삐약삐약” “꼬끼오. 꼬꼬꼬꼬”
어느 시골집 뒷마당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난다. 동물위생시험소 한편에 마련된 사육장이다. 닭의 혈액을 시료로 써야 하는 실험실 진단이 있어 필요할 때 즉시 피를 뽑을 수 있도록 닭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닭이 아닌 병아리 소리는 좀 낯설다. 병아리의 피를 뽑아서 실험용으로 쓸 일은 없고 닭이 필요하면 닭을 구입해서 키우면 되지 굳이 어린 병아리를 데려다 놓고 성체가 될 때까지 키울 필요도 없다.
그러면 이 병아리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는 걸까? 그렇다. 이 병아리는 연구를 위해 부화하자마자 데려와 키우는 병아리이다. 닭이 혈액을 위한 실험동물이라면 병아리는 자체가 실험용이다. 바이오“연구”팀에서 만들어낸 유용미생물이 정말 동물에 유용한지 실증하기 위해 육계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과거에도 바이오연구팀에서 실제 육계사육 농장을 대상으로 미생물의 효능에 대한 연구사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생물의 효과를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결과에 영향을 주는 다른 조건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어려웠고 미생물 외에 비타민이나 다른 첨가제를 급여하는 것을 하지 마시라고 축주에게 강요할 수도 없었단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된 실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정말 미생물이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보고 싶었다.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며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비슷한 연구를 해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실험실에서 차분하게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실험에 필요한 시료를 얻기 이전에 넘어야 하는 큰 산이 있었다, 바로 닭을 직접 키우는 것이었다.
수없이 육계농장을 방문해서 시료를 채취하고 때론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예방을 위해 살처분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육계를 어떻게 키우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면서도 동물위생시험소에서 나온 방역관 수의사라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쨌든 하기로 마음먹고 동료들과 팀장님께 선언을 했다. 그럴듯한 계획서를 작성해서 시험소장님 결재도 받았다. 하나하나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닭을 키울 시점을 생각했다. 병아리는 태어나서 약 일주일간은 아주 따뜻한 곳에서 있어야 한다. 보통 막 태어난 1 일령 병아리는 35℃부터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은 약 1℃ 정도씩 온도를 낮추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육기간이 약 35일 정도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온도를 낮춰서 사육을 종료하는 시점의 온도는 사람에게도 가장 살기 좋은 온도인 약 23℃가 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시험소의 계사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서 시원한 날씨로 넘어가는 8월 말 정도로 사육 시점을 정하였다. 그러나 8월이라고 해도 밤에는 기온이 떨어진다. 보온을 해주지 않으면 병아리는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그중 약한 개체는 죽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정에 보온등을 설치해서 온도가 떨어지는 저녁 이후 병아리들에게 적정한 온도 조건을 맞춰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도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부는 바람은 막을 수가 없고 쥐한테 물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또다시 고민하며 인터넷을 뒤지다가 좋은 사이트를 발견해 냈다.
그 쇼핑몰에서는 병아리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키울 수 있는 튼튼하고 큼직한 플라스틱 상자를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그 상자의 상단에 전등을 장착하고 자동 온도 조절기를 연결하여 설정한 온도에 따라 등이 켜지고 꺼지도록 하여 원하는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병아리에게 있어 생사의 고비라고 할 수 있는 7일을 아무 문제 없이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4주를 키워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또 하나의 큰 숙제였다. 사료와 물 외에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대조군과 두 종류의 미생물을 각각 사료와 섞어 먹이는 두 그룹의 실험군, 그리고 두 종류의 미생물을 혼합하여 사료와 함께 주는 나머지 한 그룹의 실험군 이렇게 4군 총 80마리를 각각 시험군 별로 분리하여 사육해야 하는 장소가 필요했다.
시험소의 사육장은 총 4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2개는 이미 실험용 닭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2개 중 하나는 비어있었지만 1개는 사료와 깔집 등의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결국 남은 두 개의 구획을 각각 반으로 또 구획하여 사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반으로 나누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가운데를 막는 것은 팔레트를 사용했다. 벽에 고리를 걸고 긴 케이블타이를 이용해 팔레트를 고정시켰다. 앞쪽은 사람이 드나들며 사료와 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각목과 자투리 나무로 만든 틀을 한쪽 벽에 고정하고 경첩을 연결하여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밤에는 닭들이 추울 수 있기 때문에 보온등을 각 구획마다 달고 바깥쪽에 위치한 계사는 웃풍을 막기 위해 비닐로 덮어주었다. 또한 틈으로 닭이 빠져나오거나 쥐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팔레트와 문을 그물망으로 씌우는 작업도 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중에서 파는 틀을 조립하여 구획을 나눌 생각이었는데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게 정교한 목공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장비를 잘 만지고 재료를 자르고 잇는 설치 작업에 능한 동료가 같은 팀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접을 뻔하였다.
자 이제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다음에는 감사하게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닥에는 뽀송한 왕겨를 5cm 정도 깔았다. 닭들도 쾌적한 환경을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붉은색 니플이 달려있어 닭이 쪼아서 물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신통방통한 물통을 놓고 분말화한 미생물을 섞은 크나큰 사료통을 두었다. 그 쯤 되니 안심이 되었다.
출근을 하는 평일에는 하루에 서너 번 둘러보며 죽은 개체가 없는지 물이나 사료를 잘 먹고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되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일찍 한 번씩 나와 닭들이 잘 있는지 둘러보고 물과 사료도 채워주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고작 네 번뿐이었으니 할 만한 일이었다(아이와 동네 꼬마들 구경시켜 준다고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주 1회 닭의 무게와 섭취한 사료의 무게를 측정했다. 28일 정도 지나니 보통 육계농장에서 30일 이상 사육해야 도달할 수 있는 무게인 1.5kg 이상으로 닭들이 잘 자라주었다.
드디어 사육 종료 시점이 다가왔다. 35일째 되는 날이다. 팀장님을 포함한 팀의 모든 인원이 동원되었다. 다행히 특별히 바쁜 일이 없다고 하는 직원들도 모집해서 거사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단단히 한다. 이젠 하나도 귀엽지 않은 육중한 닭을 시험군 별로 20마리씩 부검실로 데려온다.
이제는 아기 때 7일 동안 살았던 상자에 가득 차서 움직이기도 어려워한다. 병아리 때부터 키운 닭들을 내 손으로 보내야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래도 한 배에서 난 다른 친구들보다는 훨씬 깨끗한 환경에서 일생을 보내게 해주지 않았냐고 속으로 항변해 본다. 한 마리씩 피를 뽑고 나서 안락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무게를 재고 실험에 필요한 장기를 채취한다.
여러 명의 손 빠른 베테랑들이 달라붙으니 80마리를 해도 3시간이면 족하다. 일단 한 고비는 넘겼구나. 정말로 하긴 했구나 하는 후련한 마음도 잠시. 채취한 시료를 가지고 실험도 해야 하고 측정한 데이터로 통계 분석도 해야 한다. 절반도 못 왔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총 4번 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아 놓았으니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 해 가을 요로결석으로 크게 고생했다. 물을 많이 안 마시는 생활 습관 때문에 재발한 것 같다(그전 해에도 결석 때문에 아팠었다). 그런데 계사 짓고 닭 키우느라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결석이 생긴 거라고 아내에게 농을 건넨다. 고생하며 일한다고 티 내려고 한 말인데 아내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냐고, 왜 그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렇게 일했냐고 오히려 핀잔이 돌아온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라 더 할 말이 없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그런 일이었다. 시설을 만드는 것부터 해서 닭 사육하고 실험하고 분석하는 일까지 찾아 배워가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고 설상가상으로 원하는 대로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순전히 결과만 놓고 본다면 사실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일이었다.
연구사업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3차례 사육과 실험을 마무리하고 감사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위한 일을 한 건 아닌지, 내 욕심 때문에 인력과 예산을 낭비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일을 배우고 꾸려가며 개인적으로 느낀 뿌듯함과 성취감만이 남은 것은 아닌지, 내 다급한 속도 때문에 조금 천천히 가고 싶어 하는 주위의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 것은 아닌지...
오래 반성할 시간도 없이 새로 배치된 곳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일하는 도중 한 가지 소식이 들려온다. 그 연구가 시험소에서 진행한 연구사업 중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연구 참여자는 단기 해외 견학 프로그램의 대상자로 혜택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과한 열정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건조한 삶에 내리는 단비와 같이 아주 촉촉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