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에 서보다

나는 공무원수의사 7편

by 예일맨

법정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굉장히 많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천 원짜리 변호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과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의 실제 사건을 다룬 “재심”과 같은 영화도 있다. 그리고 “내부자들”이나 “범죄와의 전쟁” 등 정치와 범죄를 다루는 영화에서도 검사, 변호사, 판사와 같은 법률가는 꽤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고 재판장 신은 필수 옵션이다.


극적인 연출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이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가 서로의 입장을 항변하며 극렬하게 다투는 모습을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정의가 승리하는 절정의 장면을 보여준다. 이런 영상 콘텐츠를 통해 내 머릿속에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법정과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는 “소송 수행”이라는 새로운 업무 경험을 통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공무원이, 그것도 수의사가 소송을 수행한다고? 놀라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웹 사이트 뉴스 면을 보면 무슨 사건이 그리도 많은지... 경찰에 붙잡히고, 검찰에 송치되고, 1심 결과 기소유예 처분이 나왔다는 등... 기본적으로 소송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사건사고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난다. 요즘에는 이혼하는 부부도 굉장히 많다고 하는데 이혼에도 소송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장 나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평생 소송이란 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나와 같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 내가 소송을 해야 한다니. 나는 착하게 살아왔고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피고 측이 되어서 소송의 담당자가 된다. 무언가 무섭기도 하고 법정에 선다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할 것 같다. 또한, 소송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두운 무게감이 상당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관없이 난 공무원이다. 업무 분장표에 적혀있는 대로 한다. 못할 것 같아도 시작하면 다 하게 된다. 참 무서운 직업이다. 공무원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만날 하던 일만 할 것 같은 이미지이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무원은 짧게는 2년 정도가 지나면 다른 부서로 간다. 길어도 3년 안에는 무조건 보낸다.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 현장에서, 가축을 도살하고 처리하는 극한 현장에서 4년 정도를 보내고 왔는데(축산물 분석 업무는 6개월 동안 짧게 했다) 이제 소송을 해야 한단다. 마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용접일을 전문으로 하던 기술자가 사무실에 앉아서 건축과 관련된 소송을 수행하라는 것과 같다.


이런 측면에서 공무원은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것을 부딪혀 가며 배우면서 일해야 한다(공무원도 힘들다는 것은 이제 많이 알려진 것 같지만 이런 면도 좀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소송이라는 낯선 단어는 예고도 없이 불쑥 내 삶에 찾아왔다. 천천히 알아가면서 친해질 틈도 없이 말이다.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내가 수행한 소송은 바로 행정소송이다. 축산물안전팀에서 내 업무 중 하나가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사항에 대해 업체에 행정처분을 하는 것인데 해당 업체는 그 처분이 부당하거나 과하다고 판단하면 불복하여 소를 제기하게 된다. 보통 영업정지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한다. 그래서 원고는 그 업체가 되고 피고는 사장님인 경기도지사가 된다.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업체는 소송까지 가지 않고 가능한 처분의 피해를 가장 작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실제 영업을 멈추지 않고 영업정지 일수만큼 계산하여 돈으로 내는 과징금으로 전환하여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청문회를 열어 읍소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게다가 행정심판을 청구하여 처분을 완전히 취소하거나 그 강도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고 최후의 수단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로 행정소송이다.


이런저런 다른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시점에 역시 예고 없이 소장이 날아온다. 어쨌든 법에서 정하는 대로 일했는데도 소송을 당해야 하는 것은 뭔가 억울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 노력하는 업체를 이해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 벌을 달게 받지 않고 어떻게든 손해를 안 보려고 하는 업체가 얄밉다.


경기도지사의 법률대리인으로서 승소에 대한 열정을 갖기는커녕 안 그래도 바쁜데 소송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소송 수행을 해나갈 앞으로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나, 그래도 한다. 절차나 기한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해보지도 못하고 패소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을 꼼꼼히 따지며 그동안 그 업체와 진행한 일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소장을 자세히 읽으며 답변서를 작성해 나간다.

원고의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면 변론기일이 잡힌다. 용어가 어렵지만 “변론기일”이란 말 그대로 판사와 원고, 피고 모두가 모여 “변론”을 하는 날을 의미하고, 그 “변론”이란 것이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바로 그 장면이다.


영화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우는 그 재판은 실제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물론 그렇게 진행하는 재판도 있겠지만). 변론기일이 되기 전에 양측은 자신의 주장을 전자소송 사이트를 통해 서면 등으로 제출하고 판사는 그것을 모두 검토한다. 변론기일 당일이 되면 판사는 양측에서 제출한 자료가 맞는지 확인하고 자료 외에 추가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사항에 대하여 질의한다.


그러고 나서 판사는 쟁점사항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생각하면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잡아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소송 과정을 마무리한다. 물론, 주먹구구식으로 모두 모인 자리에서 판사가 구두로 그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전자소송 사이트에 공식 문서인 판결문을 등록하여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그 재판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듯 내가 생각해 왔던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는 재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약간은 실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변론기일이 되기 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주장을 충분히 서면을 통해 증거와 더불어 논리적으로 써서 내기만 하면 법정에서 그 어떤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임기응변에 능하지 못하고 달변가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에게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는 상황에 맞게 말을 잘해야 하고 상대방이 공격해도 잘 받아칠 줄 알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말도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법정에도 두어 번 가보고, 엄청나게 높아 보였던 판사라는 사람도 눈앞에서 몇 번 보고 나니 소송과 재판에 대한 두려움도 차츰 사라졌다.


직접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어봐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하면 모른다. 알 것 같아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모두 잊어버린다. 하지만 해본 것은 나의 오감이 기억한다.


현재 시점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재판장에 갔던 일들이 거의 5년이 다 되어간다. 그렇지만 소장이 접수되어 스트레스받았던 그날, 답변서를 써서 팀장님과 과장님께 검토를 받아 전자소송 사이트에 힘들게 올렸던 일들, 변론기일 당일 상현역에서부터 수원지방법원을 향해 걸어간 길, 법정에서 만났던 사람의 인상과 말투, 머리가 희끗한 판사가 했던 말 등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너무 힘든 날의 기억이라 그런 걸까. 평생 해보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이라 그런 걸까. 몇 십 년이 더 지나도 잊지 않을 것 같다. 고작 몇 번 해보고 많은 것을 알 수도 없고 평생 그 일을 하는 법률가에 비하면 새발의 피보다도 못한 경험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일인 만큼 내 삶의 지경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이 경험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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