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수의사 6편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수줍음이 많은 내성적인 성향이어서 일대일로 있을 때는 말을 곧잘 하지만 여러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심장이 두근거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똑 부러지게 해내지 못한다.
또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진지한 눈이 약간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드는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뒤에서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회는 뒤에서 숨어있으려고 하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포기하지 않는다(직장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교육도 카리스마 있는 강사가 주입식으로 하는 수업보다는 분임 토의와 발표 식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한 사람에게 발표를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모두 발표를 하도록 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미리 할 말을 세세하게 적어서 보고 읽거나 외워서 거의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나가곤 했다.
'나는 왜 남들처럼 앞에 나가서 멋있게 말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나 하고 있을까'
대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이런 나 자신이 싫었고, 나를 이렇게 낳으신 부모님과 더 나아가서는 나를 이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차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쯤 좋은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대(大) 경기도의 축산물안전팀의 주무관으로서 축산물가공업자의 영업자 준수사항에 대하여 지역별 순회교육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경기 북부 지역 담당으로 10개 시·군(구리, 남양주, 의정부, 양주, 연천, 포천, 가평, 고양, 파주, 동두천)에 위치한 가공업소의 대표자들을 대상으로 양주 섬유지원센터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경기도는 인구가 많으니 어떤 것을 놓고 봐도 가장 많다. 축산물가공업소도 그렇다. 휴업한 업소를 제외하고도 공식적으로 허가된 업소가 1,500개가 넘는다. 그중에 북부 지역에 있는 업소의 수는 전체 중 절반이 채 되지 않고 전부 다 교육에 참석하지도 않겠지만 300석이 넘는 강당 무대에 올라가 2시간가량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니 즉각적으로 긴장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팀에는 오랜 기간 그 업무를 해오신 배테랑이 있어서 강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고 잘 갖추어진 강의자료와 PPT 파일이 있어서 급하지 않게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비록 1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끝도 없는 전화 질의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강제로 공부를 하고 반복적으로 답변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웬만한 질문에는 바로 응답할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허가와 민원 처리를 위해 수많은 업체에 방문하여 현장 경험도 쌓았고 업체의 직원들과 대면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실제 원료를 들여와 가공하고 판매하는 전반적인 운영에 대한 사항과 법을 준수하고 적용하는 데에 있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만들고 달달 외우는 정도로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슬라이드를 보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떨리는 마음으로 연습을 했다.
“쓸고, 닦고, 조이고”
크고 탁 트인 목소리로 팀장님께서 먼저 교육을 하고 계신다. 그다음은 실무자인 내가 나가서 해야 한다. 긴장감에 얼굴은 약간 굳었지만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진 않는다. 다행이다. 심호흡을 하고 차가운 물을 들이키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거의 끝나간다. 처음에 무슨 말로 입을 뗄까 고민해 보지만 이내 머리는 새하얗게 깨끗해진다. 준비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아주 자신이 없지는 않다. 아주 못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2시간 뒤에 후련한 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그 순간을 기다린다. 어느새 엉덩이를 떼고 한 발 한 발 내디뎌 강단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제 시작이니 곧 끝이 오리라.
“이것으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으시면 손을 들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질문 있습니다.”
“저도 질문 있습니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모든 질문에 전부 답을 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추가 질의가 있으신 분은 저에게 따로 질문을 해주시기 바라고, 시간이 없으신 분께서는 전화나 메일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서너 분의 공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났지만 한 분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뒤에 몇 분이 줄을 이루고 있다. 강의를 마치고도 30분이 넘게 그들의 질의에 답변 또는 답변 약속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도 내 나름대로 교육을 많이 받아봤기 때문에 강사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인 정서상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꺼리고 내가 질문하면 교육 시간이 길어져서 주위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있어도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질문하기를 피한다. 따라서, 질문이 많다는 것은 곧 수강자들이 그 교육 내용에 관심이 많아 열심히 그 강의를 들었고, 강의를 듣다가 생기는 의문점을 반드시 그 자리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 가지는 교육생들은 질문했을 때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강사에게 질문을 한다. 다시 말해 강의를 통해 강사의 실력을 무의식적으로 평가하고 좋은 점수를 줬다는 것을 뜻한다. 내 첫 강의는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 투박한 코란도 스포츠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오는 길은 마치 일타강사가 되어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러 이동하는 것만 같았다.
그다음 해에도 장소와 교육 대상자는 바뀌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주마다 달마다 하는 것이 아니고 일 년에 한 번 하는 것이라 역시 능숙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처음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 것은 40년 평생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사실 관리자 급이 아닌 일반 실무자 수준에서는 연구 또는 조사한 것을 발표할 기회는 적지 않지만 교육을 하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다. 교육, 곧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보다 그 분야에 대하여 훨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보통 팀장 정도는 되어야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도 그런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단 두 번뿐이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강사의 삶을 맛볼 수 있었다. 주목받는 자리에 서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약간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잠시였을 뿐 지나고 나니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강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고 나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경험은 그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특별해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는 그들에게 있어 강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일을 해내고 나니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사람은 경험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나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자진해서 남들을 이끌어가는 자리 나 대중 앞에 서서 말하는 위치에 있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을 억지로 피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엄청나게 잘할 자신은 없지만 못할 것은 또 없지요.”
“저는 300석이나 되는 강당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