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수의사 5편
“고객님의 말 한마디가 고객 응대 상담원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됩니다. 폭언 등을 하지 말아 주세요.”
전화로 문의할 일이 있어서 어떤 기관이나 회사에 전화하면 항상 들을 수 있는 안내 멘트이다. 인터넷 사이트나 앱으로 연결해서 자동으로 안내를 해주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사람과 직접 대화해서 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는 전화로 문의를 하거나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담원과 고객 사이의 마찰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상담원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통화 전에 안내멘트가 나오도록 설정을 해놓았을 것이다. 나는 막연히 수많은 까칠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담원이 정말 힘들겠다고 단편적으로만 생각했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고 때로 마음이 급할 때는 안내멘트가 귀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축산물안전팀에 근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7년 7월,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엉겁결에 바쁘고 힘들기로 악명이 높은 곳으로 오게 되었다.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 축산물안전팀이다. 나는 급하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타입이 아니다. 발령을 받아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면 최소 2~3일간은 전임자가 했던 일을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런데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도통 뭔가를 차분하게 볼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것저것 알려달라고 물어보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민원인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 중에서 가장 큰 경기도청이다 보니 시·군청과 상급 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전화가 상당히 많이 온다.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전화를 끊기를 수차례. 모니터와 책상 앞에는 전화번호와 문의내용이 적힌 포스트 잍만 자꾸 쌓여간다.
그나마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전화는 응대하기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 전화를 건 쪽이니까. 당장 답을 못해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도 하고 업무를 맡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일반적인 것을 물어보는 민원인에게는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문의하신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 홈페이지를 먼저 보신 후에 다시 전화 달라고 답을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어려운 분들에게는 메일로 직접 설명자료를 보내드릴 수도 있으니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민원 신고를 하신 분들을 전화로 상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공무원에게 민원을 넣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직접적으로 전화를 하는 방법이다. 아니면 민원을 넣고자 하는 부서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담당자 메일을 확인한 뒤에 직접 메일을 보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여러 소통 창구가 마련된 지금 많이 쓰이지 않는 방법이다.
공공기관의 조직이 세분화되다 보니 내 어려움을 해결해 줄 담당자를 찾아내기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아마 기관의 대표번호로 전화를 해서 “진짜” 실무자 또는 담당 팀장을 찾으려면 수차례 전화가 연결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민원인들이 “국민신문고”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민원 처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특정 분야에 있어 쉽고 빠르게 불편 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별도의 시스템을 두어 운영하기도 한다.
부정·불량 식품(축산물 포함) 신고만 접수하여 담당자에게 연결하고 처리하도록 하는 1399 시스템이 있다(모든 식품 포장재 뒤편을 보면 부정·불량식품은 1399로 신고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내가 축산물안전팀에서 주로 처리했던 민원이 바로 이 1399 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민원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시스템에 등록된 내 휴대폰으로 접수를 알려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온다. “1399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접수번호 00000번”. 전화로는 평일에만 신고가 가능하지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하면 주말에도 가능하다. 가족들과 주말에 나들이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접수 알림 문자가 한두 시간 간격으로 몇 통이 와서 매우 좋았던 기분이 급우울해지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아주 다양한 유형과 종류의 신고가 있는데 일단 1399 민원신고가 접수되면 자세히 민원 내용을 살펴본다. 어떻게 민원을 처리할지 과거의 유사한 처리결과나 법령을 확인한 뒤에 신고된 제품이 만들어진 제조사를 불시에 찾아간다. 그리고 접수된 민원과 관련하여 위법한 사항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필요하면 위생 점검이나 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조사한 결과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여 보고하고 민원인에게 답변할 민원회신문을 써서 전송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 중에 가장 하기 두려운 것은 민원회신문 발송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민원을 접수한 뒤에 바로 전화해서 아직 누그러지지 않은 감정을 토로하는 분들도 있지만 가장 받기 어려운 전화는 바로 이 회신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전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하기 싫을 때는 보고를 다 마친 후에 보내지 않고 있다가 금요일 17시 59분에 전송 버튼을 누르고 퇴근한 적도 있다.
회신문을 꼼꼼하게 읽어보신 민원인은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로 조사 결과가 너무 늦게 왔다는 것이다. 본인이 민원을 넣은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왜 이제야 결과를 보내주냐고 따져 물으신다. “민원 처리기한을 지켰고, 다른 일도 있었고, 출장도 갔다 와서 보고서도 써야 하고 바쁩니다. 블라블라” “그래요? 당장 유해한 축산물을 먹어서 탈이 났고 병원에도 다녀왔고 앞으로 건강이 더 나빠지면 어쩔 겁니까?” 변명은 민원인에게 통하지 않는다. “더 빨리 처리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답을 빠르게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한 처세이다.
두 번째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유에서 화학 약품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여름철에 많았다.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그 우유를 직접 수거해 가서 분석하길 원하셨다. 자신이 먹은 우유에 어떤 유해한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민원인의 심정은 백번이고 이해한다. 우유 맛이 이상하고 먹고 나서 속도 안 좋으니 공장에서 해로운 물질이 들어간 것 아닌가 의심해 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민원인의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면서도 민원인의 불만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고, 더 쌓여가기 전에 내 일 한 건을 쳐냈다는 것에만 만족감을 느끼며 뻐꾸기 같이 매번 비슷한 답변만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하지만, 더 나은 해결책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 저자세로 귀하의 신고를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읍소할 뿐이다.
“아, 선생님 그러시죠..? 죄송합니다. 저희도 드신 우유를 가져다가 검사를 해드리면 좋겠는데요, 검사는 개봉하지 않은 유통기한 이내의 제품에 한해 성분 규격에 대한 것만 가능합니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어떠한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밝혀내는 수준의 검사는 해드리기 좀 어렵습니다"
"다만, 해당 제품을 제조한 공장에 직접 불시에 방문해서 제조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동일 로트 제품에서 유사한 민원이 제기되어 피해를 본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위생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그 외 법령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을 진행했고, 상하거나 유해한 성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더 철저히 관리하도록 업체를 지도했습니다. 그러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공무원이 민원 업무로 힘들다는 말을 전부터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 일인지 말이다. 2년 8개월 동안 그 업무를 담당하면서 공무원뿐 아니라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모든 상담원과 근로자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하는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미지로 먹고사는” 회사에 고용된 상담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전화를 해온 상대와 맞받아치며 싸우기 어렵다.
겸손하고 친절한 자세를 취하려고 늘 노력하는 그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오늘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안내 문구를 끝까지 듣고는 다짐해 본다.
“나의 1399 상담원 시절을 잊지 말고, 최대한 상냥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