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의 달인

나는 공무원수의사 3편

by 예일맨

“이제 소 채혈하는 것을 실습해 볼 겁니다”

“소는 보정이 된 상태라면 경정맥에서 채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 혈관 보이죠? 여기를 주사기로 찌르면 되는데... 어? 잘 안되네. 다시!”

(몇 번 시도한 끝에 주사침 아래로 피가 흐르자) “와~!!!! 교수님 멋져요~!!”


학부 시절 축산과학원으로 현장 실습을 갔을 때 당시 대동물 내과 교수님께서 채혈 시범을 보이셨던 일이다. 입사하고 약간 세월이 흐른 뒤에 소 채혈에 능숙하지 못한 후임이나 공중방역수의사들을 보면 이따금씩 그 일이 떠오른다.


당시에 교수님은 두 번 정도 해보시다가 잘 안 되는 것을 보고 세 번째에 좀 더 힘 있게 주사기를 혈관에 찔러 넣었다. 그랬더니 주사기가 혈관 속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주사기 안으로 피가 모이지 않았지만 혈관이 손상되면서 밖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채혈의 목적은 진단이나 검사 등을 하기 위해 피를 충분히 모아 실험실로 가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교수님의 채혈 시범은 완벽한 실패였다.


교수님도 이론적으로 채혈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50명이 넘는 인원들이 모두 가축을 채혈해 볼 수 없기 때문에 교수님은 진짜 실습 대신 채혈의 현장을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으셨겠지만 잘되지 않아 적잖이 당황하셨다. 그저 피가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한 순수한 학생들이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러 구겨진 교수님의 체면을 약간이나마 살려주었을 뿐이었다.


입사한 뒤에 수의사들이 채혈하는 모습을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와 입사한 시점이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신입 수의사들도 그저 주사기를 소의 몸에 갖다 대면 금세 주사기를 혈액으로 가득 채워냈다. 교수님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본 나로서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에 나는 채혈에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혈액이 어떤 소의 혈액인지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주사기에 소의 개체번호 적는 일부터 했는데, 펜으로 적는 것보다 채혈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두 사람이 주사기를 한 움큼 방역복 주머니에 넣고 축사 내부로 들어가서 엉덩이가 거의 눈높이와 비슷한 큰 젖소의 꼬리를 든다. 그러더니 어느새 내가 있는 앞쪽으로 붉고 검은 주사기를 던진다(검은 것은 소똥이 묻어서 그렇다). 나는 주사기를 받아서 적기 바빴다. 내가 적는 속도가 채혈하는 속도보다 더 느리다는 것을 알아챈 동료 수의사는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조절하기도 한다. 고맙게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다. 공중방역수의사 3년을 보냈지만 거의 축산물 관련 실험실에서 있었기 때문에 가축 농장 현장 일은 적응이 쉽지 않았다. 키가 작고 팔도 짧은 나는 나보다 키가 큰 젖소 뒤에 서는 것이 무서웠다. 리치가 짧으니 발 한 번 뻗으면 내 다리에 곧 닿을 것만 같아 모양 빠지게 엉덩이를 뒤로 주욱 빼고 최대한 맞지 않을 자세로 채혈에 임했다.


젖소의 미정맥 채혈은 그다지 난도가 높은 편은 아니어서 다행히도 꼬리를 들고 가운데 부분을 찌르니 피가 나오기는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의 절반도 하지 못했고 열 마리 하면 한 마리 정도는 피가 잘 나오지 않아 다른 동료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소의 꼬리를 드느라 팔이 아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의 미정맥 채혈은 내가 할 수 있고 하면 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흡족하기만 했다.


다음 관문은 한우 채혈이었다. 교수님이 실패했던 그 경정맥 채혈을 이제 직접 해볼 차례였다. 축사 밖에 나와 스탄존에 들어와 있는 한우의 목 부위에서 채혈을 하는 것이라 일단 발에 채일 일은 없어서 안도했다.


밧줄로 고리를 만들어 소의 뿔에 걸고 주둥이 쪽으로 줄을 한 바퀴 감아 돌린 뒤에 한쪽으로 소의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도록 축사 기둥에 붙잡아 맨다. 그러고 나서 경정맥이 지나는 라인의 가슴 쪽을 손으로 눌러 혈관을 조이면 혈액이 모여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 호스 이상의 굵기로 혈관이 둥그렇게 소의 몸 밖으로 불거져 나온다. 그때 10ml 주사기의 굵은 바늘을 그 혈관 속으로 집어넣으면 끝이다. 말로는 굉장히 쉽다. 그런데 그 교수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보통 공무원 수의사가 농장에 가서 소를 채혈할 때는 한 두 마리로 끝나지 않는다. 전염병이 의심되거나 실제 감염이 확인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해당 농장의 소 전체를 채혈하게 된다. 한 마리, 두 마리를 해도 피가 잘 나오지 않는다. 뭔가 알 듯 말 듯하다. 이번 농장에서는 약 50% 터득한 것 같다.


자 이제 다음 농장이다. 역시 꽤 많은 수의 소를 채혈해나가야 한다. 보통 두 사람이 짝을 이뤄 한 사람이 보정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채혈과 기록을 하기 때문에 나와 짝을 이룬 사람은 속도가 느려 답답하기는 해도 다른 조에 비해 일은 적게 할 수 있어 운이 좋은 셈이다.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무엇인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참 신기했다. 내 엄지 손가락보다도 굵고 튀어나온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왜 찌르면 시원하게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하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샌가 찌르면 나오는 한우 채혈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한우 경정맥 채혈은 과감하게 혈관 속으로 주사 바늘을 찔러 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그때 그 교수님도, 무언가 혈액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나도 크고 굵은 혈관이 눈에 보이는데도 채혈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은 주사 바늘이 피부만 뚫고 들어갔거나 혈관의 겉 부분만 살짝 건드렸거나 아니면 혈관을 관통하는 등 혈액이 흐르고 있는 혈관 속으로 주삿바늘을 정확하게 집어넣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우 경정맥 채혈법을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면서 교수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교수님도 한우의 경정맥에서 채혈을 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쉽게 보여도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여러 번 해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기술”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또한 체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 번 그것을 얻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기술을 익히는데 필요한 시간과 고통을 잘 견뎌내고 꾸준히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이러한 이치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인 내 아이가 한참 구구단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5단까지는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지만 6단이 넘어가면 좀 힘들어한다. 분명 아들은 당장은 어렵지만 구구단을 반복해 외워서 7단과 8단을 넘어 곧 9단까지 정복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한 번 외운 구구단은 평생 아들을 곱셈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 아이가 구구단을 외우듯 지금 내가 반복해서 연습해야 할 그 “기술”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수의사로서 편협한 경험만을 해왔기에 아직 익히지 못한 기술이 많다. 그리고 한 여인의 남자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교회 어린이 선생님으로서, 교회 목장의 목자로서 능숙해져야 할 기술이 정말 많다. 내가 가진 이름표는 너무 많은데 아직 갓 들어온 신입생처럼 미숙하다. 내 삶에 주어진 이처럼 다양한 기술들에 숙련된 조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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