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수의사 2편
여느 때처럼 출장을 갔다가 복귀해서 전자우편을 열어보니 메일이 한 통 와있었다.
“현장 업무 부상자 현황을 조사합니다”
메일을 열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가축사육농장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다가 다친 적이 있는 사람은 붙임의 엑셀 파일에 부상 당시 수행한 업무와 부상 부위, 정도 그리고 이후 처치 내용을 적어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메일을 보자마자 당시 고작 1년 정도 일했는데도 일하면서 다쳤던 일들이 여럿 떠올랐고 자잘한 부상을 제외하더라도 두 세 건은 어렵지 않게 적어낼 수 있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메일의 내용을 보면서 다들 울분을 토하며 자신이 겪은 사고들을 늘어놓느라 한 동안 사무실 분위기가 떠들썩했다.
“저는 채혈하다가 소 뒷발에 허벅지를 차여서 소 발굽모양이 그대로 찍혔었잖아요. 그 자국 없어지는데 몇 주 걸렸다니까요”
“참.. 다리 한 대 차인 정도는 애교라고 봐야죠. 저는 밧줄로 소를 펜스에 묶어서 보정하는데 갑자기 소가 튀어나가는 바람에 손가락이 밧줄 사이에 끼어서 손톱이 빠졌어요. 잘못했으면 손가락 부러질 뻔했다니까요”
실제로 공무원 수의사들이 일하는 현장은 위험천만하다. 특히, 소의 경우 결핵병, 브루셀라병,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개체별로 혈액 등의 검사 시료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시료 채취 이외에도 농장에서는 가축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거나 예방 접종 등을 편하게 하기 위해 소가 사료를 먹으려고 고개를 넣는 순간 자동으로 목을 걸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스탄존(stanchion)이라는 자동목걸이 장치를 설치한다.
하지만, 여기에 걸리지 않는 개체들이 있고 심지어 이 장치가 없는 농장이 있다. 그런 농장에서 시료를 채취하려면 한 마리씩 밧줄로 목이나 뿔을 걸어 붙들어 매어야 한다. 돌아다니는 소의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잡을 수 없으면 농장의 울타리를 이용해 소를 가두고 울타리 양쪽을 밧줄로 고정시킨 후에 꼼짝없이 갇힌 소들의 꼬리를 들어 올려 미정맥에서 혈액을 채취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을 하니 간단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이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스탄존에 걸려있는 소들도 엉덩이와 뒷 발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래서 꼬리를 들고 채혈을 하거나 결핵 검진을 할 때 예민한 소는 눈으로 뒤를 힐끔 쳐다보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어 꼬리를 멋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게 한다. 더 성깔이 있는 소들은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있는 힘껏 발차기를 한다. 좀 더 화가 많고 몸이 가벼운 녀석들은 두 발을 모두 들어 드롭킥을 날린다. 나도 한 젖소 농장에서 이 드롭킥에 명치를 맞아 순간 숨을 쉬지 못하고 소의 분변이 가득한 축사 바닥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은 적이 있다.
목이 걸린 소들도 이렇게 위험한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의 뿔에 밧줄을 걸어 축사 기둥에 걸고 당겨 매는 일은 말해 무엇하랴. 카우보이와 같은 정교한 기술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또한, 울타리를 고정해서 소를 가두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 밀집해 있는 소들의 꼬리를 찾아들어 올려 채혈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상당히 위험하다. 실제 고정해 놓은 밧줄이 끊어져 울타리가 갑자기 열리는 바람에 그 울타리에 얼굴을 맞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 사람도 보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때로는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보이는 이 육중한 겁쟁이들을 원하는 대로 다루려면 어찌 보면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소 농장 울타리 틈을 통해 탈출한 소를 잡으려다가 그 소가 흥분하여 날뛰는 바람에 몸을 부딪혀 갈비뼈가 부러진 포천시 수의사 선생님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3년 정도 무수히 많은 소 농장을 다니면서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업무량으로 따진다면 그리 많지 않지만 소 농장에 가는 것보다 더 긴장되고 위험한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사슴 결핵 검진이다. 사슴은 소에 비해 수가 많지 않을뿐더러 사슴의 생피를 먹는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라져서인지 사슴의 결핵 검진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그래서 사슴 결핵 검진을 하려고 하면 농장에 찾아가거나 전화를 해서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슴은 소와 같이 개체별 이력이 철저하게 관리되지 않고 농장 간 이동 시에도 사전에 결핵병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결핵병에 감염된 사슴이 상당히 많고 아직 감염되지 않은 개체 또한 감염된 동거축에 의해 전염될 위험이 상당히 높다.
어쨌든 사슴 결핵 검진이 위험한 이유는 사슴의 공격성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예쁜 꽃사슴이 왜 위험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슴 농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사슴은 작고 귀여운 꽃사슴이 아니라 범접하기 힘든 위용을 자랑하는 엘크이다. 엘크의 크기는 약 3미터 정도 되고 무게는 500kg 정도로 웬만한 한우 정도의 덩치를 자랑한다. 사슴을 사육하는 이유는 보통 뿔을 약재인 녹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고, 엘크는 크고 좋은 뿔을 갖고 있다. 문제는 수컷만이 이 뿔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아무리 초식동물이라 하더라도 엘크 수컷은 남자답게 공격성이 강하다.
이러한 엘크를 소처럼 밧줄로 붙잡아 맬 수는 없기 때문에 결핵 검진을 할 때는 마취를 한다. 사람이나 반려동물처럼 차분하게 약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약물을 넣은 주사침을 불로우건에 넣고 불어 맞추는 방식으로 마취를 한다. 정글의 법칙에서나 볼 법한, 아직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은 소수 부족의 전설의 사냥꾼이 대롱에 독침을 넣고 불어서 짐승을 기절시키는 것처럼.
마취제가 몸에 들어가면 사슴은 흐느적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주저앉는다.ㆍ 그때 사슴 결핵 팀은 재빠르게 들어가 사슴의 눈을 가려 더 깊은 안정을 취하게 한다. 그러고는 눈에 잘 띄는 부위의 털을 깨끗하게 밀고 PPD를 접종한다.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면 혈액을 채취하고 회복약을 주사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입문을 향해 도망간다.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면 위험할 것도 없겠지만 항상 이렇게 아름답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취약 용량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마시면서 술이 깬다는 술고래처럼 금세 상태가 좋아지는 특별한 존재들이 있다.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던 녀석이 우리의 아직 할 일을 다하지 못했는데 슬며시 고개를 든다. 행여나 일어날까 봐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얼굴을 누르고 있던 100kg에 육박한 나름 거구의 남자를 그대로 들어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마취를 했어도 언제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출입구가 닫히지 않도록 퇴로를 확보하고 여차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바로 뛰쳐나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사슴 결핵 검진은 이토록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밖에도 분변을 치우지 않아 마치 갯벌에 발이 빠지는 것처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농장에서 검진을 했던 일, 줄을 지어 서있는 젖소의 뒷발이 갑자기 날아오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좁은 통로를 지나야 했던 일, 자꾸 엉덩이를 무는 돼지를 내쫓으며 채혈했던 일 등 수많은 쉽지 않았던 상황이 있었다.
현장에서 몸으로 일을 해야 하니까 항상 건강해야 하고, 다치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그토록 좋아하는 스키를 타지 않는다고 말했던 한 동료 수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당시 그 말에 감명을 받아 나도 현장 방역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다치지 않도록 특별히 몸 관리에 신경을 썼다.
생각해 보면 수의사로서 위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대동물 임상 수의사는 우리 공무원 수의사들 못지않게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고 극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한다. 편안하고 우아해 보이는 소동물 임상 수의사도 자신보다 더 큰 대형견들을 다뤄야 할 때도 있고 때때로 물리고 할퀴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 있든 수의사는 말 못 하는 동물을 만지고 다뤄야 하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직업이다.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수의학적인 지식과 경험 못지않게 좋은 수의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무리 조심해도 뜻하지 않은 사고는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사한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켜주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