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진을 쓰다니 딱 걸렸어

나는 공무원수의사 10편

by 예일맨

“올 해는 소모품 출납 대장 잘 맞춰놓아야 해”

“왜요 내년에 무슨 일 있나요?”

“내년에 우리 동물위생시험소 감사 있잖아. 소모품 대장 보고 실제 물품이 그만큼 남아있는지 맞춰보는 사람도 있다니까.”

“사소한 것에 트집 잡히지 말고 이런 거라도 잘해놔. 그래야 감사 기간에 맘 편히 잘 수 있어. 안 해놓고 있으면 감사 언제 끝나나 괜히 불안하다니까.”


감사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평소와는 다르게 모든 일에 “철저를 기하자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는 분이 있다. 실제로 감사에서 걸리지 않기 위해 일을 규정대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많이 보았다. 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행여나 감사에서 지적될 소지가 있는데 그대로 기안해도 괜찮겠냐고 나를 따로 불러서 물어보는 부서장도 있었고, 다칠 수 있으니까 아예 건드리지도 말라고 하는 부서장도 있었다.


아마도 감사를 신경 쓰는 이와 같은 분들은 과거에 감사관에게 많이 시달려보았거나 실제 감사 결과에 따라 신분상의 처분을 받았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감사 자료를 주말도 밤낮도 없이 준비해서 제출해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 감사를 받아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무식한 자가 용감한 것인가... 왜 그렇게 감사 감사 하면서 지레 겁을 먹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감사관을 만나고 온 사람들 중에는 왜 이런 자잘한 것까지 지적하냐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규정을 들이대며 이대로 왜 안 했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감사가 궁금했다. 감사를 왜 하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같은 공무원을 벌벌 떨게 하는 무시무시한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고 싶었다.


기회가 있었다. 감사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감사관실에 수의직 자리가 한 자리 있는데 거기에 있는 분이 육아휴직을 쓰게 되어서 자리가 난다고 한다. 마침 나도 한 부서에서 일한 지 2년이 넘어서 자리를 옮길 수 있다. 기다리던 "인사이동 희망자 조사” 우편에 주저하지 않고 답장을 보낸다. '감사관실 지원합니다'


감사관 일이 힘들다고 소문이 나서인지 나 말고는 다른 지원자가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인사철마다 빠지지 않는 은밀한 복도통신이 귀를 어지럽힌다. '이번에 승진하는 사람 중에 A가 감사관으로 간다더라' '또 다른 지원자가 있다던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은 아무런 소용도 효력도 없다. 인사는 나봐야 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게시판에 뜬 인사발령사항을 내 눈으로 확인한다. “감사관, 수의 6급 조OO” 내 이름이 있다.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로 인사가 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부서로 배치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공문에 적인 이름 석자를 확인하니 이제 안심이 된다.


인사 발령에 따라 공무원의 이동은 무섭도록 빠르게 이루어진다. 인사 발령 공지가 뜬 당일,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 다음 날에는 다른 곳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내가 지원해서 간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내 길을 개척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못다 한 업무를 정리하고 짐을 꾸린다.

셔츠와 기지 바지, 운동화가 아닌 신발이 많이 어색하다. 종일토록 활동하기 편한 스크럽 가운을 입고 2년 넘게 일하다 보니 격식을 갖춘(?) 차림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까지 일했던 사무실과는 아주 다른, 낯선 곳으로 가야 하니 긴장감으로 가슴속이 꽉 들어찬다.


난생처음으로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미금역에서 광교중앙역까지 고작 다섯 정거장.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출퇴근 길이다. '이것이 바로 직주근접의 힘이던가!' 감격하는 마음으로 도청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입주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반짝거리며 우뚝 솟은 광교 경기도 신청사의 위용이 얼어붙은 나를 다시 한번 압도한다. 그렇지만 내심 굉장히 만족스럽다. ‘이렇게 번듯한 건물에서 일을 다 해보는구나’ 벤츠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더 좋다고 하지 않던가.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깔끔한 오피스룩을 선보이며 멋들어진 건물을 드나들 생각을 하니 역시 감사관에 지원하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새로 발령받아 간 부서에서 3개월이면 루틴에 익숙해지고 6개월이면 어느 정도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을 했던 것 같다. 어느덧 직장생활도 10년 차에 접어들었고 경험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어딜 가서 무엇을 해도 전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아내에게 잘할 자신은 없어도 못할 자신은 더 없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감사관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감사관실로 배치된 8월 중순은 여름휴가의 여운이 아직 많이 가시지 않은 나름의 업무 비수기였고 발령 다음 주에 시작될 감사는 즉시 현장에 투입되기보다 사무실에서 학습과 준비의 시간을 갖으라는 의미로 빠지게 되었다. 첫 감사를 나가게 된 10월 중순까지 약 2개월의 기간이 감사관실 배치 이후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용인시로 첫 감사를 나갔던 기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가장 설레기도 하고, 가장 재밌기도 했지만 가장 잠 못 이루고 뒤척였던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감사를 하고 어떻게 문서를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상의하면서 일을 해나갔다.


마치 과외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많이 해주었던 같은 팀 동료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맘에 사무치게 고맙다. (그분을 포함해서) 많이 버거워하는 나에게 뭐라도 챙겨주고 도와주고자 노력했던 많은 분들 덕분에 그래도 일 년의 감사관 생활을 견딜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용인시에서 감사관으로서 뭐라도 하나 의미 있는 감사를 하기 위해 매의 눈으로 살폈다. 다행히도 초보인 내 수준에 딱 맞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려동물 전문 훈련사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행동교정 수업을 진행하는 “반려동물 문화교실 사업”에 관한 것이었다.


2021년은 여전히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면이 아닌 줌(ZOOM) 프로그램을 이용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였고 강사료를 지급하기 위한 증빙자료로 입장한 사람이 나오도록 캡처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특이사항 때문에 명확하게 확인하지 못하였는데 자꾸 들여다보니 같은 사진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씻고 들여다보아도 딱 정확하게 동일한 사진을 수십 장 중복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레카'. 업체의 불성실한 업무처리를 적발하고 조금 늦었지만 용인시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바쁘고 힘들다는 감사관실 생활을 3개월 정도 평화롭게 보내고 나니 서서히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안성시 감사 일정으로 3주간 출장을 나가 감사를 해야 하는데 도민감사관 표창, 활동보고서 제작, 활동보고회 등 업무가 겹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감사 현장에서 감사에만 집중해도 쉽지 않은 초보 감사관인데 다른 업무를 병행해야 했고 사무실에 복귀하고 나서도 바로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을 해야만 했다.


나는 야근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야근을 좋아해서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6시까지 집중해서 일하고 나면 그 이상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저녁까지 먹고 나면 몸이 늘어진다. 체력이 약해서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물론 집에 가서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차라리 저녁을 먹지 않고 7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절대 저녁을 먹고 8시까지 일을 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저녁을 먹을 거면 차라리 10시, 11시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해야 했다. 금요일 저녁에 일할 수 있는 힘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면 집에 가서 쉬고 토요일 아침 일찍 회사에 한 번 더 나와 집중해서 일하는 편을 택하였다.


12월 24일이 되기를 무척이나 고대했다. 예수님의 탄생 기념일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안성시 감사 출장을 나가기 직전에 결정되어 안성시 감사와 함께 준비한 도민감사관 활동보고회가 12월 23일에 열렸기 때문이다. 그날이 되면 끝나있겠지.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얼마나 후련할까. 끝나있을 그날을 맞이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준비했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었다. 꾸역꾸역 겨우겨우, 그렇지만 다행히도 큰 문제없이 행사를 잘 마쳤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처음 담당자로서 행사를 치르는데 이렇게 급박하고 힘겹게 해야 한다니. 당일 교회에서 성탄축제가 있어서 퇴근하고 집이 아닌 교회로 향했다. 몸은 축 늘어져 있었지만 예수님 생신 축하 행사는 전보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2023년 8월 22일이니까 아직 얼마 되지도 않은 2023년의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안성시에서 감사한 건에 대한 징계 처분요구서를 작성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일, 오산시 감사를 주관하여 최종 결과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까지 챙겼던 일, 의왕시 감사 대신 3기 도민감사관 위촉을 위해 몇 개월 동안 일희일비했던 일 등등...


유명한 영화배우인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직장 생활도 그런 것 같다.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당시의 상황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생각해 보면 그것 나름대로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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