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절식 탐정

다 해보고 싶어 1편

by 예일맨

도축장에 가축을 출하하려는 자는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가축을 도축장에 출하하기 전 12시간 이상 절식(絶食)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를 오전 6시에 도축장으로 실어 보내려 한다면 최소 12시간 전인 전날 오후 6시부터는 소에게 물을 제외한 어떤 것도 먹이지 않아야 한다. 이 규정은 축산물 품질 하락, 사료 낭비, 도축장 오폐수 증가 등을 막고자 2013년 7월에 개정되어 2014년 초부터 시행되었지만 내가 도축장에서 근무하였던 2016년에도 여전히 자리잡지 못한 유명무실한 규정이었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제12조의2(가축등의출하전준수사항)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출하 전 절식(絶食), 약물 투여 금지기간 등 총리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

2. 가축을 도축장에 출하하려는 자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

제18조의2(가축등의출하전준수사항) ① 법 제12조의2제1항에 따라 출하 전에 준수하여야 하는 사항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가축을 도축장에 출하하기 전 12시간 이상 절식(絶食)할 것. 다만, 가금류는 3시간 이상으로 하며, 물은 제외한다.


포유류는 12시간 이상 사료를 주지 않고 출하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축주도 여전히 많았고 알아도 지키지 않는 축주도 적지 않았다. 법은 있는데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공무원이 힘들어진다. 규정을 준수하라고 잔소리도 많이 해야 하고, 말로 되지 않을 때에는 공문으로 시정명령을 하거나 위반이 반복되면 과태료도 부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규정을 준수했는지 현장 검사관이 확인해야 하는데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정말 12시간 이상 절식을 했는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농림부에서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절식 여부를 판정할 수 있도록 자료를 배포하였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소는 3위, 돼지는 위의 내용물의 양과 소화된 정도를 시간대별 사진과 함께 비교해 놓은 형식이었다. 사료의 조성과 종류, 개체별 섭취량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 사진 몇 장으로는 현장에서 절식 규정의 준수 여부를 판정할 수 없었다.


내가 있던 도축장은 포유류 도축장이기 때문에 소와 돼지 두 축종의 절식 여부를 확인해야 했는데 돼지의 경우 대부분 위 내용물이 비어있었다. 다행히도. 돼지는 반추동물도 아니고 빠르면 16시간 만에 먹은 것을 몸 밖으로 배설한다.


농장에서 도축장으로 오는 시간과 이후 도축이 되기까지 계류하는 시간을 더하면 몇 시간이 지나는데 이 시간 동안 먹은 것이 이미 장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위에서는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절식 규정을 지켰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중앙기관의 지침이 위 내용물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니, 찝찝하지만 일단 돼지는 합격이다.


문제는 소였다. 큰 도축장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많으면 20마리, 적으면 4~5마리 정도 도축하였는데 위 내용물의 양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개체는 겉에서만 보아도 단단하게 위가 들어차 있었고 어떤 개체는 바람 빠진 튜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농장에서 출하 전 절식을 준수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감시를 철저히 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검사할 때 열심히 위를 절개하여 양과 성상을 살폈지만 위 내용물만 보아서는 12시간 절식을 시키고 왔는지 도저히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그냥 절식 규정 잘 지켰다고 하고 넘어가자’

‘명확하게 판단할 수도 없고 바쁜데 이걸 일일이 다 어떻게 자세히 확인해...’

‘아니야, 그래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위 내용물이 너무 심하게 많은 것만 적어놨다가 축주한테 12시간 절식 잘 지키라고 말이나 해주지 뭐...’


마음속에서는 그냥 대충 하고 넘기자고 타협을 하려던 참에 다른 도축장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입사한 지 3년 조금 지난 시점이라 아는 분도 많지 않아서 (하루에도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몇 백 마리씩 소를 잡는) 큰 도축장에서 일하는 선생님들 몇 분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절식 관련해서 문의 좀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그 도축장에서는 소 절식 준수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나요? 저는 가이드라인만 보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던데, 거기 나름대로 정해놓은 기준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우리도 고민이에요. 하긴 해야 하는데 기준도 불명확하고, 그냥 적당히 하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역시 물어보길 잘했다. 현재의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도축장에서도 가이드라인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고 자체 기준을 세워서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스스로 기준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내부 기준일 뿐 그것으로 절식을 위반했다고 단정 짓고 행정적인 처분을 내릴 수는 없다.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무도 별도의 기준을 만들어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나도 거기서 그쳤을 것이다. 훌륭한 선배님의 마지막 그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절식 관련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이네.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직접 세부적인 기준을 한 번 만들어보면 어때요? 만들어서 우리한테도 좀 공유해 주고...”


‘그래, 이거다! 내가 한 번 만들어보지 뭐!’


중앙에서 무언가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기준도 없이 일하라고 한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지금 일하는 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도축장에서 일하는 많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떻게 하면 자료를 좀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재미도 있었고 열정도 솟아났다.


먼저, 1위 내용물의 양과 성상을 기준으로 하여 몇 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1) 꽉 들어차서 터질 것 같이 빵빵하고 내용물의 형태가 온전한 것

2) 60% 정도 차있고 내용물의 형태가 일부 보이나 소화가 진행된 것

3) 30% 정도 차있고 내용물이 죽처럼 되어있는 것

4)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믈흐믈하고 내용물이 거의 액체 상태인 것


그리고 현장에서 각 개체별로 1위의 외양과 내용물의 사진을 찍고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 기록하였다. 이후 축주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언제부터 사료를 주지 않고 도축장으로 보냈는지 물어보았다. 위 내용물을 가지고 먼저 단계를 정하고 나중에 절식 시간을 알아내 매칭하는 것이다.


축주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비과학적인 방법이었지만 내가 도축장 현장 검사관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구 방법이었다. 하루에 평균 10~13 마리를 도축했으니 몇 주 정도 지나자 몇 백 건의 데이터가 쌓였다. 제법 많이 모인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소에게 12시간의 절식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출하 전 절식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12시간 정도 절식을 시킨 뒤에 출하한 소의 1위는 거의 비어있어야 한다. 아울러 농림부 가이드라인과 같이 3위에도 볏짚의 형태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2시간가량 절식한 소의 1위에는 소화되지 않아 온전한 형태를 지닌 내용물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다. 출하하기 직전에 사료를 엄청나게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다수의 실제 사례를 통해 최소한 20시간 이상은 절식을 해야 소의 위에 사료가 많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조사한 결과를 열심히 정리하여 도축장에서 일하는 검사관들이 모두 모여있는 단톡방에 공유하였다. 데이터의 활용도를 떠나 많은 선배 수의사들께서 잘했다고 톡방에 글을 남겨주셨다. 따로 전화를 주셔서 그동안 모은 자료를 좀 다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었고 논문을 한 편 썼다며 치켜세워 주는 분도 있었다.


시키지 않은 일을 통해 얻은 뜻밖의 성과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농림부에서 주최하는 절식 관련 협의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하여 내가 조사한 방법과 결과를 그 자리에 참석한 전국의 관계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일은 내가 공무원이 되고 나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이지만 법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면 정말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거기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그 뒤에는 오지 말라고 기를 쓰고 막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바로 주위의 칭찬과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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