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해보고 싶어 2편
“아저씨, 오늘 샘플 몇 마리에요?”
“오늘 엄청 많아요!”
“아, 내일 또 정밀검사 보내게 생겼네! 기사님들한테 그만 좀 가져오라고 해주세요”
“내가 말한다고 듣나?! 검사관님이 얘기 좀 해봐요!”
도축장의 인싸 계류장 아저씨와 오늘 아침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저씨는 돼지 작업 순서를 칠판에 적은 뒤에 “샘플” 돼지가 몇 마리이고 언제 도축되는지 알려주기 위해 검사관실 문을 매일 아침 두드렸다.
“샘플” 돼지는 법에서 정하는 허용기준 이상으로 항생제 몸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은,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돼지를 일컫는 말이다(공식 용어가 아니라 도축장에서 편하게 부르기 위해 사용한 비공식 용어이다). 이런 샘플 돼지는 도축은 하되 항생제 잔류 검사를 실시한 뒤에 음성인 경우에만 출하를 허용한다. 내가 일했던 도축장은 이런 샘플 돼지가 꽤 많이 들어왔다.
병치레가 많아 성장이 더디고 먹이 경쟁에서도 밀려 다른 돼지들보다 훨씬 왜소한 위축돈. 수차례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업을 다 마치고 이젠 쇠약해져 걷는 것마저 힘이 드는 모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젊은 비육돈도 있다. 이런 샘플 돼지들은 건강한 돼지를 모두 도축한 후에야 따로 도축한다. 그리고 휩쓸려 출하되지 못하게끔 “샘플”을 뜻하는 “S”자를 A4 용지에 큼지막하게 써서 매달려있는 도체의 옆구리에 잘 붙여놓는다.
이 샘플 돼지들의 항생제 잔류 검사를 하기 위해 신장과 근육을 한 덩이 떼어서 시료 봉투에 담아 덜렁덜렁 들고 실험실로 온다. 빠르게 출하를 해야 하는 도체의 경우에는 항생제 신속검사 키트를 사용해서 금방 결과를 알아 조치할 수 있지만, 보통은 EEC-4 plate 법과 E-coli plate 법을 이용해서 간이 검사를 한다. 보통 퇴근하기 전 인큐베이터에 넣어 놓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오자마자 결과를 확인하는데, 항생제가 그 시료에 남아있으면 디스크 주위에는 미생물이 잘 자라지 못해서 둥그렇게 깨끗한 원이 생긴다.
규정에 따라 간이검사 양성인 개체는 시료를 다시 정밀분석 실험을 할 수 있는 축산물 성분분석팀으로 보낸다. 공식적인 양성 확인과 해당 농장이 “항생제 잔류물질 위반”으로 확정하는 것은 도축장이 아닌 성분분석팀에서 하게 된다. 잔류물질도 축산물의 단위 무게당 허용되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인지, 이하인지 아주 미세하게 검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축장에서 나의 역할은 축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출하하신 가축에 대해 항생제 잔류 간이검사를 했는데 양성이 확인되었습니다. 정밀검사를 위해 시료를 다른 팀으로 보냈고 며칠 뒤에 결과가 나오면 그 팀에서 알려줄 겁니다”라고 간이검사 양성이 나온 사실과 그 이후의 절차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한 달에도 몇 차례 항생제 간이 검사 양성을 확인하고 축주에게 안내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축주를 비롯해 그 가축을 운반한 기사와 도축장 계류장 아저씨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었다.
(축주) “항생제 안 썼어요. 아니, 사실 쓰긴 썼는데 항생제 사용법대로 했어요. 나 억울한데...”
(운반기사) “검사관님, 그거 휴약기간 지킨 게 맞아요. 저도 혹시 검사에서 걸릴까 봐 약품 사용 대장 확인해 봤어요. 휴약기간 지나고 출하한 거 맞아요”
(계류장 아저씨) “아, 저 사람들 자꾸 그런 소리하네. 혼 좀 내줘요 검사관님”
항생제 잔류물질 위반이 확인되면 "잔류 원인조사"라는 것을 공무원이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데 과거 그 업무를 해본 적이 있다. 농장에 직접 찾아가서 축주에게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약품 사용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난 항생제를 쓰지 않았는데 왜 검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있었고, 다른 농장 개체하고 순서가 바뀐 것이라고 주장하며 도축장에서 잘못한 거라고 오히려 따져 묻는 분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축주들 거짓말하는 거 내가 한두 번 당해봤나?!’ 마음을 다잡으며 무시하려 해 봐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말투에 가만히 앉아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것. 바로 “자료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엑셀로 표를 만들어서 항생제 간이검사 양성이 확인된 농장의 축주가 사용했다고 하는 항생제의 명칭과 투약을 한 마지막 날짜, 출하일, 검출 농도 등을 자세하게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양성이 나온 것들도 들춰보았다. 정밀검사 결과와 원인조사 공문도 찾아가며 정리해 보았다.
“유레카”
항생제 간이검사뿐 아니라 정밀검사에서 다수의 양성이 확인된 물질(약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축주들이 용법을 지켜 사용했는데 잔류 위반에 걸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바로 그 약품. “부타 D”라는 항생제였다(7년 전의 일이라 약품명이 기억나지 않아 인터넷을 한참 돌아다닌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항생제 사용 설명서를 살펴보니 돼지의 경우에 휴약기간이 10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약을 사용하고 10일이 지나면 체내에 허용기준을 초과한 양의 항생제가 남아있지 않으니 출하를 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내가 직접 통화한 축주들은 휴약기간 10일을 지켰다고 말했다. 혹시 몰라서 일주일 정도 더 지나서 출하를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약품 설명서에 나오는 용법을 그대로 지킨 것이다.
그런데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 그것도 허용기준을 훨씬 웃도는 높은 수준으로 말이다. 이상했다. 휴약기간이 10일이면 굉장히 짧은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약품 회사에서 휴약기간에 대한 확실한 데이터 없이 제품을 만들고 유통했을 리 만무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약품을 제조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 민원을 넣어야 하나...’
‘동물약품을 관리하는 검역본부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축주들에게 이 약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이 약품을 쓰긴 쓰되 휴약기간을 훨씬 더 길게 잡으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축주들은 그 약을 쓰고 휴약기간을 지키지 않아 검사에서 적발되어 억울한 피해자가 될 것이고, 운 좋게 출하되면 그 고기를 먹는 다수의 국민들은 허용기준 이상의 항생제를 섭취하게 되는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성급하게 서두르기보다 나는 확실한 증거 자료를 더 풍성하게 모으고 정리해서 당시 항생제 정밀분석을 담당하는 담당자와 시험소 전체의 잔류물질 관리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무래도 그분들은 항생제 잔류물질 관리와 관련해서 검역본부와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하기도 하고 회의석상에서 만나기도 하니 나보다 훨씬 그 내용에 대해서 잘 전달하리라 믿었다.
나는 그 메일을 발송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HP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때문에 도축장을 떠나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워낙 심각한 수준의 발생이었기에 정신없이 몇 개월을 일하다가 또다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단 5개월을 보내고 의정부 북부청사로 가게 되었다. 여기저기 장소를 바꿔가며 내가 도축장에서 무슨 일을 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때쯤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정리해서 나한테 보내준 거 내가 검역본부 동물약품평가과에 보냈거든요”
”글쎄, 보내놓고 나도 잊어버리고 살았거든. 근데 그 약품 휴약기간 변경됐더라고... 돼지는 20일, 모돈은 30일로 늘었더라고요. 나도 최근에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