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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어야 했다

by 예일맨

금주에 있었던 한 케이스가 자꾸 생각난다. 오전 일찍 간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주증으로 9살짜리 귀여운 포메가 내원했다.


간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것은 어딘가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진료가 될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간 설사와 구토가 있어 지난밤 24시 병원에 갔었고, 간수치(ALT, GGT, T-bil)와 염증수치(CRP)가 정상치를 상회하는 결과를 보였다고 했다.


수의사는 암이니, 종양이니… 심각한 이야기를 하며 입원도 해야 하고 초음파 검사도 하자고 말을 했는데, 상태가 심각해 보이지는 않아 다니던 병원으로 아침 일찍 부랴부랴 온 것이다.


검사결과지를 보니 CBC, 혈액가스에는 이상이 없었고, 간 관련 검사도 심각하게 수치가 높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문제가 있어서 초음파 검사를 권유했고 바로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간에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고, 담낭도 커져있거나 안에 뭔가 차있지는 않았다. 벽이 경미하게 이중으로 보여 찝찝했지만, ALKP도 정상이고 담관도 확장돼있지 않아 담즙의 흐름이 막힌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열흘 전 여행을 다녀온 터라 중독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다. 그래서 식욕이나 활력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최소 24시간은 입원하여 수액과 간 관련 보조제로 치료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에도 육안상 아이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검사해 보고 수치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면 퇴원시킬 생각이었다. 다른 수치들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정상이었던 ALKP 수치가 3000 가까이 되도록 높아져 있었다.


초음파 상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담낭은 전일보다 더 뚜렷한 이중벽으로 보였고, 담낭 내부와 담관에 고에코의 뭔가가 관찰됐다. 하루 만에 없던 담석이 생기진 않았을 테니 전날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담낭에 뭔가 다른 게 찬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러고 나서, 아쉽지만 원장님과 상의 하에 2차 병원으로 전원을 하기로 했다. 그 순간에는, 깔고 앉아있지 않고 빠른(?) 결정으로 더 잘하는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잘했다고 보긴 어려워도 못하진 않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로 미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경험적 항생제를 너무 빠르게 투여했다는 것이다. (야간에 간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해 이미 하나를 먹이고 왔지만… 나라도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담낭벽이 이상한 것을 오전에 봤기 때문에, 나중에 담낭 천자를 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항생제 투여는 좀 뒤로 미뤘어야 했다. 이미 항생제가 전신에 퍼지면 담낭천자를 해도 배양이 잘되지 않기 때문에 감염여부도 적합한 항생제도 알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당일 수치와 초음파만 보고 "중독"으로 가진단하고 그쪽에 너무 치우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변화라 아직 효소 수치로 반영되지 않고 초음파 상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어야 했다.


보호자가 따라올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었지만 (우리 병원에서 할 수 없어 타원에 보낼지언정) 간 이상 시 진단의 기본이 되는 생검을 언급했어야 했고, 최소한 담낭천자가 지시된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또한,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수액과 보조제만 투여하며 수치 떨어지기만 바라는 아주 소극적인 의료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선택은 보호자가 하더라도 의사는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큰 병원 갔으니 잘하겠지… 스트레스 안 받고 맘 편하지 뭐…' 수의사로서 부끄러운… 못나디 못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 같이 가지 못해도, 안 따라오더라도 바른 길을 알려줘야 했는데… 너무 후회되고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하다.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이렇게 배워가는 거지… 앞으로 같은 실수 안 하면 되지…'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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