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 일을 생각하다 2편
농림축산식품부가 2021년 9월 국민 5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패널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가구의 비율은 25.4%이다. 쉽게 말해서 4 가구 중 1 가구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말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반려동물의 양육인구는 602만 가구, 1,306만 명으로 추정된다.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반려동물 양육가구의 75.6%는 개를 기르고 있고, 다음으로 고양이를 기른다는 응답은 27.7%였다. 중복을 허용한 답이었기 때문에 둘을 합하면 100%가 넘는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거의 개와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반려견의 수는 약 550만 마리, 반려묘는 약 250만 마리이다. 10년 전에 비해 늘기는 했지만 최근 3~4년의 추이를 보면 이제는 정체기에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1인 가구의 증가, 혼인 및 출산율 감소 등 앞으로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이어질 우리나라의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반려동물의 수는 향후 10년 동안 적어도 줄지는 않을 것 같다.
한편 반려동물산업의 규모는 반려동물의 숫자와 상관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2015년 1조 9천억 원 규모였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작년 2022년에는 8조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불과 7년여 만에 4배가 증가한 엄청난 성장이다.
또한, 최근 2023년 8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대책’을 발표하였다. 반려동물 산업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지정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2027년까지 시장 규모를 2022년의 2배 수준인 15조 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은 내가 속한 경기도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의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는 2018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반려동물 전담 부서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조직 개편을 단행해 “축산산림국”을 “축산동물복지국”으로 변경하는 동시에 “동물보호과”를 “동물복지과”와 “반려동물과”로 나누어 업무를 보다 세분화하고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함으로써 반려동물에 관한 행정력을 강화하였다.
그뿐 아니라 더 작은 단위의 기초 지자체에서도 늘어나는 반려동물, 유기동물 및 관련 산업과 민원 등을 처리하기 위해 전담부서를 마련하고 있으며 유기동물을 보호·관리하고 입양을 돕는 동물보호센터를 비롯해 반려동물 문화센터, 테마파크, 반려동물 놀이터 등 반려동물을 위한 여러 시설을 확충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의 성장과 정책의 변화는 수의사의 진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대한수의사회 조사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배출된 수의사의 25%만이 임상 수의사가 되었다(임상 수의사의 90% 이상은 소동물, 흔히 말하는 반려동물 수의사이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36%, 2010년부터 2021년까지는 56%로 크게 늘었다. 30년간 임상 진출 비율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대한수의사회는 이러한 통계를 통해 우리나라도 이미 수의사의 분포가 임상 위주의 “선진국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공직 등 여러 분야에 수의사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바뀐 수의계의 패러다임은 되돌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 시절, 집 지킴이 또는 사냥용으로 “쓸모 있지 않으면” 먹거리로 간주되었던 개가 가족이 되기까지 불과 몇 십 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절반에 가까운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임상 수의사의 비율이 80%에 육박하는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학 재학 시절 호주인지 미국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외국에서 공무원 수의사로 일하는 선배 한 분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분은 자신이 일하는 나라에 공무원 수의사가 부족해서 다른 나라의 수의사를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으로 서울이나 경기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일수록 수의직 공무원을 채용하려 해도 지원자 자체가 없어 골머리를 앓은 지 꽤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공무원 인기 하락과 더불어 수도권의 공공기관도 공무원 수의사의 인기가 점점 떨어져서 선발 인원에 비해 응시자가 적은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입사 3년 미만의 젊은 수의사들의 이탈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이것은 내 일에 닥친 현실이자 더 어두운 미래의 전조현상일 수도 있다. 아무리 수의사라고 할지라도 쉽게 들어온 사람들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력이 채워지지 않으면 남은 사람들이 더 많이 수고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다 다음 세대를 키우지 못하는 조직의 앞날은 결코 밝을 수 없다.
2023월 8월 17일, 대한수의사회 주관으로 간담회가 열렸다. 중앙과 지방의 방역 관리 부서장이 참석하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의사가 아닌 사람을 가축방역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공무원 수의사의 수당 인상과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임용 시 직급 인상(7급에서 6급으로) 등 처우 개선을 선행하고, 시험소의 단순반복 업무를 민간으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거점동물병원 체계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수의사가 오지 않으려고 하면 더 좋은 대우를 해주어 더 많은 수의사가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을 뽑아서 일하게 해야 한다. 당연한 논리이지만 비용과 규정 개정이라는 장애물을 건너야 하는 현실에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가 보다.
공무원 수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몇 년째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지만 실제로 개선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을 다루는 중앙에서는 깊숙이 들어있는 본질적인 원인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얄팍하고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문제를 살짝 덮으려고 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제 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약했던 변화의 바람이 거세져 저 깊은 곳까지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이 거대한 물결을 무사히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길 진심으로 원한다면 “뗏목‘이 아니라 ”유람선“에 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선원은 “1등” 항해사로, 선장은 바다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