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지 않고 살리는 방향으로...

내일의 내 일을 생각하다 4편

by 예일맨

코로나19라는 태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여전히 주위에 코로나에 걸려서 쉰다는 사람도 있고 가끔 뉴스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젠 잊힌 해프닝일 뿐이다. 몇 년만 지나면 ‘아 그런 일이 있었지?’하며 기억을 더듬어봐야 생각이 날 “아주 옛날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던 2020년 모두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것이 있었다. 이제는 별로 관심도 없지만 당시에는 전 인류에게 있어 신이 내려준 생명수와 같았던 그것. 바로 백신이다.

포털 사이트 메인은 오늘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그리고 또 다른 핫뉴스는 바로 백신 개발에 대한 기사였다. 새로운 방식의 백신인 mRNA 백신을 만들어 방어 효과를 입증했지만 안전성이 완벽하게 확보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워낙 상황이 엄중하니 긴급하게 승인하여 전 세계에 공급되도록 한단다.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백신의 부작용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 생각에 이견이 없었다. 처음 사용하는 기술로 백신을 만들었다고 하니 혹시나 모를 위험성이 두렵기는 하지만 코로나19의 공포는 그 두려움을 훨씬 뛰어넘었다.


K-방역으로 전 세계의 주목과 칭찬을 받은 정부도 백신 수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약간 지체되자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만큼 백신이 간절했다. 공급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백신 접종을 예약했다. 심지어는 남는 백신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도 등장했다.


이런 코로나19 방역을 경험한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방역이었다. 백신을 개발하는 것에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도 승인해 주었다.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나 동물은 다르다. 반려동물이 아닌 먹기 위해 기르는 산업동물 말이다.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당시 엄청난 속도로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가는 구제역을 잡기 위해 발생농장과 주변 500m의 우제류 가축을 완전히 도려냈다.


하루에도 수 백 개의 농장에서 구제역 발생신고가 들어오니 방역기관의 행정력과 살처분 인력은 물론 땅을 파고 나르는 중장비까지 완전히 마비되었다. 살처분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정부에서는 두 손과 두 발을 들어버렸다. 백신을 접종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당시 강원도에서 공중방역수의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워낙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그래도 수의사라고 백신 접종 인력으로 차출되었다. 다섯 명의 팀원을 거느린 팀장으로서 일주일간 주사기를 들고 강원도 소 농장을 누비고 다녔다.


전국의 소와 돼지에 구제역 백신을 주사하니 몇 주 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어 뛰어난 효과와 안전성이 확보된 백신이 있는데도 끝까지 가축을 죽이면서 버티다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백신을 사용한 것이다.


사람의 전염병 방역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지만 동물은 하나의 물건이고, 재산이요, 사람의 배를 불리고 영양을 채우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산업동물에 대한 철학적 인식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그리고 산업동물은 어차피 사람을 위해 죽이려고 만들어낸 생물인데 방식과 목적이 다르지만 죽이는 것이 별스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결국 다 죽이게 생겼으니 그것만은 막으려고 최후의 보루로 아껴두었던 무기를 사용한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효과적인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매년 겨울철마다 주기적으로 백신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어나는 가축전염병이 있다. 바로 그 이름도 무서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줄여서 "AI"라고 하겠다)이다.


구제역과 마찬가지로 AI 역시 효과적인 백신이 있다. 사람의 독감처럼 유행 양상이 자주 바뀌는 바이러스 특성상 정부에서는 항원 뱅크를 만들어 긴급한 경우 그것을 이용해 백신을 만들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지 않으면 백신을 사용할 계획은 없는 것 같다.


AI 백신 접종 시 면역이 형성된 집단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전파”로 인해 백신주와 야외 바이러스 간 유전자 재조합으로 변이가 일어나기 쉽다는 것과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 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백신 사용을 자제하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실상 산업동물이 지니는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써의 철학적 의미와 경제 논리(조류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시에 드는 비용이 살처분 비용보다 더 크다고 한다)가 짙게 깔려 있다.

매년 날씨가 서늘해지면 닭과 오리를 키우는 축주들은 밤잠을 설친다. 방역업무를 하는 수의사들은 겨울철에는 멀리 휴가 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겨울에 해외여행을 예약했다가 취소하거나 갔다가 급하게 귀국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매년 반복되는 이 싸움을 하느라 축주를 비롯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상당하다.

아무리 고생을 해도 AI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이미 오래다. 본격적으로 철새가 유입되는 시점이 되면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면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아, 올해도 시작됐구나...’


사람과 가축을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 "사람과 같이" 모든 조류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AI 백신을 접종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년 알면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야생철새가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한 농장에서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어떤 농장의 조류들은 그 병에 걸려 강제로 죽어야 하고 그 농장의 반경 1km 안에 있는 조류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전에는 3km였으나 축주들의 반대로 최근 개정되었다). 이것은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이미 정해진 미래이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

“어차피 죽어야 하는 동물들이니 걸리면 죽이고 그 해 잘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어야 하나?”


이제는 좀 "살리는 방향으로" 가축방역의 기조를 전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전체가 어렵다면 위험지역이나 일부 농장을 지정하여 시범적으로라도 백신 접종을 시도해봐야 한다. 미리 안될 것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것이 낫다. 부작용을 연구하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K-방역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대한민국이라면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수없이 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가축들을 생각해 본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태어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는 가여운 생명들에게 조금 더 살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keyword
이전 24화"가축 공장"이 없어져야 끝나는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