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 일을 생각하다 3편
나는 오늘 아침 계란 세 개를 잘게 썬 양파와 함께 잘 섞은 뒤 팬에 올려 노릇하게 부쳐냈다. 그리고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매콤한 김치찌개와 함께 야무지게 먹어버렸다. 아! 얼얼한 입 안을 부드럽고 시원하게 해주는 우유 한 잔도 잊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집 냉장고에는 계란과 고기, 우유와 같은 축산물이 부족하지 않게 채워져 있다. 식탁 위에 풀만 있고 고기나 계란 같은 씹을 것이 없으면 뭔가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축산물은 맛있다. 그리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가 가격도 이젠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사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야채로 가득한 비빔밥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주지 않으면 빈정 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삶이 풍족해지니 육류 섭취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커졌다. 그리고 그것은 뒷마당에서 닭 몇 마리 키우면서 아침에 계란 빼먹는 수준의 소규모 사육이 아닌 대규모 축산업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축산물을 공급하여 이윤을 취하는 하나의 비즈니스로서 축산업이 발전하였다. 자연스럽게 최소의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의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한 이른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되었다.
공장식 축산의 대표적인 예로 산란계 농장을 들 수 있다. 요즘 지어지는 최신식 산란계 농장건물에는 창이 없다. 이것을 “무창계사”라고 한다. 창이 없지만 환기 시설이 있어 공기를 순환시킨다. 진짜 공장처럼 온도와 습도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끝도 없는 케이지가 펼쳐진다. 7층, 8층으로 아파트처럼 높이 쌓아 올려진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이다. 전자레인지만 한 공간 안에 닭 2~3마리가 들어가 있다. 닭 한 마리당 면적이 A4 용지 한 장보다도 좁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시료 채취 때문에 닭을 케이지에서 꺼내야 할 때가 가끔 있는데 피를 빼는 것보다 닭을 빼는 것이 더 어렵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그래도 살아야 하니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고 또 알을 낳는다. 닭은 마치 알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속에 들어가 있는 부속품 같다.
돼지의 경우도 만만치 않다. 현재 대부분의 양돈농장에서 모돈은 출산 직전까지 스톨이라고 하는 가로 60cm, 세로 220cm 크기의 철재 틀에 갇혀서 살고 있다. 2030년부터는 수정 후 6주까지만 스톨 안에서 사육할 수 있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어 사정이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실제 돼지는 열을 식히기 위해 흙탕물 같은 곳에 몸을 적시지만 물과 공간이 충분하다면 자는 자리와 싸는 자리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깨끗한 동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돼지들은 농장에서 여러 마리의 다른 돼지들과 비좁은 공간에서 분뇨와 함께 뒤섞여 살게 된다. 돼지농장도 산란계 농장과 비슷하게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밀폐된 건물로 되어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환기 시설을 갖춘다고 해도 수 백, 수 천마리의 돼지 분뇨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쉽게 없애지 못한다.
돼지농장에 많이 가보았다.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옷은 물론이고 온몸에 냄새가 밴다. 아무리 샤워를 열심히 해도 냄새가 난다. 코도 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향이 진한 스킨로션도 코 주변에 발라주어야 비로소 내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렇게 축산농장의 가축들은 그들의 생태와 습성을 고려하지 않는 불결한 사육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비좁은 공간에서 여러 다른 동물들과 먹이와 공간을 놓고 경쟁하며 우리는 다 알 수 없는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길지 않은 생애를 보내야 한다.
밀집 사육, 비위생적인 환경, 경쟁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
이것은 동물이 병원체에 보다 쉽게 감염되게 만든다. 그리고 순식간에 같은 공간에 있는 수많은 다른 동물들에게 병을 옮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축산농장은 가축의 전염병 감염과 전파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10년대 초에 소와 돼지의 구제역 발생으로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다. 백신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나와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또한, 매년 겨울철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2019년 가을 드디어 휴전선 부근으로 침투하여 은근히 남하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게다가 앞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전염병이 있다. 그리고 동물에게만 병을 일으키던 바이러스가 어느새 “인수공통전염병 바이러스”로 변이 될 위험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공무원 수의사들은 많이 지쳐 있다. 축산농장과 도축장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근무환경은 사실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부터 추위가 마무리되는 2월까지는 나라에서 정하는 공식적인 "가축전염병 특별 방역기간”으로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아도 대비 차원에서 매일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근무를 서야 한다.
주위 지역에서 가축전염병이 한 건이라도 발생하면 주말이고 휴일이고 가리지 않고 비상근무를 서면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신고에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시에는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발의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관내에 전염병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해당 농장 살처분과 근거리 농장 예방적 살처분을 시작으로 발생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주위 농장에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예찰을 해야 하고 위험요소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개월간 전염병 전파 모니터링을 위한 시료 채취 및 검사를 해야 한다(기본 업무에 추가적으로 더하여해야 하는 일들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에 들어와 국가재난형 가축전염병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 유입 경로를 사전에 예방하는 차단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가축 전염병의 예방은 그것이 사라져야만 끝나는 게임이다. 정부에서 축산농장의 “동물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하지만 축산농장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철저한 자본주의적 논리로 운영된다. 더불어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따진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시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현재의 공장식 축산농장이 생겼고 잘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시스템을 당장 강제로 바꿀 수는 없다. 축산농장의 소유주들도 국민이고 그들도 살아야 한다. 갑자기 마리당 사육면적의 기준을 동물복지 농장 수준으로 높인다면 거액의 빚을 져 축사를 건축한 축주들은 가축 사료값도 지불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동물복지 농장에서 나오는 축산물을 그만큼 더 비싸게 팔아서 그 비용을 만회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현실적으로 소비자는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 값이 비싸면 주저할 수밖에 없다.
뚜렷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 논리로 무장한 효율적인 축산농장은 앞으로도 장기간 지속될 확률이 높고 그런 농장에서 나온 저렴한 축산물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동물복지”의 조건이 훌륭히 갖추어진 농장의 축산물을 그만큼 더 비싸게 주고서라도 사 먹으려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축주들도 자신들의 눈앞의 이익만을 쫓을 것이 아니다. 미래의 환경과 국민의 건강과 동물의 복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결국 축주 본인의 다음 세대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엄중한 일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가축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 수의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지방직 말단 직원으로서 중앙부처의 지침과 상관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고 내가 가진 권한으로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의 축산업 현실에 대해 단지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공장식 축산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일하고 있는 내 상황에 대해 불평과 회의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
가축 전염병 전문가로서 쉽게 변하지 않을 현재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더 나은 농장 동물 복지와 더 효과적인 전염병 방역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모이면 큰 힘을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현재는 요원하게만 보이지만 느리게 조금씩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