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 일을 생각하다 5편
나는 수의사이다. 간절히 원했든 아니든 나는 수의사가 되어 14년을 일했다. 잠깐의 꿀 같은 휴식기를 보내며 내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다. “수의사”란 뭘까? 먼저 포털사이트에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수의사(獸醫師)는 명사로, “가축에 생기는 여러 가지 질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의사”를 의미한다.
“가축”이란 단어는 요즘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옛날식 표현이다. 사전도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 대신 “동물”이라는 조금 더 부드럽고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사육 목적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바로 산업동물과 반려동물로 구분한다(뒷마당에서 닭을 열댓 마리 키우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가축이 맞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의사에게 동물이란 존재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동물이 없으면 수의사란 직업은 존재할 수 없고, 동물이 지니는 가치에 따라 수의사의 가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례로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늘고, 반려동물을 정말 가족처럼 아끼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수의사의 위상도 한껏 높아졌다.
그래서 내 직업인 “수의사”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은 곧 “동물”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과 같다. 동물의 질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수의사는 “동물이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훌륭한 수의사가 되고자 한다면) 수의사가 되기 전에 충분히 사고하여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허나 나는 성적에 맞춰서 유망하다고 하는 수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수의사가 되고 난 후에도 그냥 하루하루 살았을 뿐 깊이 성찰해보지 못했다. 참 한심하다. 그러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만 배는 낫기에 이제라도 한 번 해보고자 한다.
사실 동물의 의미를 고찰해 본다는 것은 철학적(종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40년간 살면서 읽고 듣고 경험하며 생각해 온 것이 있으니, 내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글로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세기 9:2~3)”
인간이 동물을 제멋대로 다루며 괴롭히게 된 것이 이러한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서구의 이성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기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다. 인간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성을 지닌 특별한 존재”이며, 동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동물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식의 인간 중심적이고 종 차별주의적인 태도이다.
안타깝지만 30년 이상 교회에 성실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 온 나도 은근히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사람은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는 우월한 존재”라는 의식이 있었다. 이 성경 말씀을 모른다 할지라도 동물은 사람보다 확실히 약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힘센 사자, 코끼리라고 해도 사람을 당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모든 동물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맡긴 역할은 동물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주인”으로서 모든 것을 빼앗고 학대하라는 뜻이 아니다. 동물 또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이다. 인간에게 주신 역할은 관리자로서의 역할이다. 각각의 동물이 그들이 가진 습성대로 다른 동물 및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한 마디로 그렇지 않다. 동물들은 자연계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어찌 보면 잔인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호랑이가 사슴의 목을 물어 죽여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먹는 것을 보면 누구도 그 상황이 이상하거나 호랑이가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맹수가 초식동물을 사냥하듯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 동물을 먹이로 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모든 산 동물을 먹을 것으로 주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닭을 평생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좁은 케이지 안에 가두고 닭이 낳는 알을 골라서 먹는 방식은 어떠한가? 그래도 굶지 않고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나?
강하고 똑똑한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닭이 말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잔인한 사람은 산란계가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닭을 쪼아 상처를 입히지 못하도록 태어난 지 일주일이 되면 부리를 자른다. 사람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닭이 겪는 아픔을...
많은 산업동물들이 부자연스럽게 거대한 고기 공장에서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아픔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실상 우리 인간과 먼 친척과도 같은 동물들을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장난감 다루듯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산업동물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마트에서 깨끗하게 포장된 고기 상태의 제품만 보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죄스럽기도 하다.
이름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려동물도 산업동물과 같은 동물이지만 대우는 완전히 다르다. 산업동물이 반려동물보다 지능이 낮거나 고통을 덜 느끼는 존재여서도 아니다(돼지는 개보다 지능이 더 높다고 한다). 동물이 갖는 “고통을 느끼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의미만 놓고 본다면 전혀 다른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산업동물의 차이는 지구의 최강자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생기고야 말았다.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인 개와 인간의 교류는 3만 년이 넘는 무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개는 소나 말보다도 가축화된 지 오래됐다고 하는데 먹이경쟁에서 이탈한 늑대가 민가 근처에서 머무르며 인간이 남긴 음식을 받아먹으며 살다가 길들여졌다는 설이 있다.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현재의 늑대와 같은 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개는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이젠 너무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개도 역시 약한 존재로서 인간의 욕심에 의해 희생된 측면이 있다. 개는 인간이 원하는 스타일, 외양 및 성격을 갖추도록 근친 교배되어 왔고 그에 따라 여러 유전병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고 귀여운 것을 원하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많은 반려동물들이 스스로 먹이를 잡지도 못하고 몸집도 작은 연약한 존재로 태어난다.
그리고 여전히 반려동물을 판매하기 위해 비위생적으로 관리하며 무분별하게 번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기용이 아니어서 그렇지 인간에 의해 이용당하고 희생되는 것은 산업동물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인간들에게 갖는 의미는 날로 소중해지고 있다. 인간에 의해 인간을 좋아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서로에게 주는 애정과 관심이 각별하다. 반려동물은 사람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서로의 행복을 위해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반려동물은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안락한 생활공간과 부족함 없고 다양한 먹을거리를 제공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다.
물론 반려동물을 과시용으로 쓰거나 자기만족의 목적으로 단지 “물건”으로 키우다가 힘들면 버리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와 같은 반려동물을 치열한 바깥세상에 내버리는 것은 산업동물에게 가하는 학대보다 어쩌면 더 잔인한 학대일 수 있다.
동물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동물은 소리와 눈빛과 표정과 행동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안다. 또한, 무엇보다 “아픔”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물을 지나치게 아프게 만드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안다.
동물들은 우리 몸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양분이 되어주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런 소중한 존재들을 아껴주어야 한다. 우리의 힘을 그들을 괴롭게 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조물주가 우리에게 내려준 사명이기도 하고 우리와 우리 자손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더불어 수의사는 이렇게 소중한 동물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직업이다. 대상이 반려동물이든 산업동물이든 모든 동물이 지닌 가치를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수의사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그리고 수의사로서 수의사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