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헬스적" 마인드를 갖자

내일의 내 일을 생각하다 6편

by 예일맨

천산갑(穿山甲)이라는 동물이 있다. 아르마딜로나 개미핥기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익숙한 그들과는 다르게 이 동물은 뭔가 낯설다. 동물이라기보다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절대고수가 사용하는 전설적인 무구(武具)의 이름 같다.


“뚫을 천, 메 산, 갑옷 갑”


산을 뚫을 듯한 단단한 껍데기로 뒤덮인 이 동물은 갑자기 유명세를 탔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천산갑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시작하여 사람에게 오기까지 거쳐온 중간숙주 가운데 하나라고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듣도 보도 못한 이 천산갑을 거쳐 코로나19가 나한테까지 왔다고 한다. 어이가 없지만 사실이다. 알지 못하였을 뿐,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여러 가지 질병이 동물을 통해 왔다. 현존하는 모든 감염병의 60%가 인수공통전염병이고 신종 감염병의 최소 70%는 동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최근 100년간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중국 남부와 라오스, 미얀마 지역이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식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연히 박쥐의 개체수가 늘어났고, 더불어 해당 지역으로 새로운 박쥐 40여 종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코로나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박쥐가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러스의 변이가 일어났고,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천산갑이나 너구리, 사슴 등 중간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감염이 가능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울러 인간이 박쥐의 서식지를 과도하게 침범하고 파괴함으로써 인간과 박쥐 사이의 접촉이 늘어나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과학계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연구를 통해 제기된 합리적인 추론일 뿐 인간에게 새로운 감염병이 생긴 경로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인간의 행위가 동물의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결국 그것이 인간에게 화살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방점을 찍었지만, 코로나19 이전에도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넘어온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는 이미 코로나19를 예견하는 전조현상과도 같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같이 전 세계를 위협할 또 다른 인수공통전염병이 머지않아 출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지금 상황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 용어가 있다. “원헬스(One Health)”이다. “원헬스”란 그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환경(생태계)과 인간과 동물의 건강은 곧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모두의 건강을 보장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통합적 접근법”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사건을 통해 “원헬스” 개념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에게 감염되고 사람 간 전파로 큰 문제가 되었지만 원인체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바이러스는 맨 처음 박쥐로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박쥐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박쥐가 왜 이제야 그런 바이러스를 갖게 되어 다른 동물들에게 전해주었는지 생태계에서 또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환경과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전부 잘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단 하나라도 놓치면 완벽하게 풀지 못하는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단 한 사람 또는 단 한 기관이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해당 문제에 걸쳐있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기관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의사는 “원헬스”라는 협업체계에서 중요한 한 축을 맡아야 하는 직업이다. “원헬스” 개념이 도입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인수공통전염병의 발생 때문일 것인데 수의사가 바로 인수공통전염병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중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도 물론 그렇지만 동물과 동물의 질병에 대해 잘 아는 수의사는 "원헬스"를 실현하기 위해서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 인력이다. 그런데 "원헬스"는 대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하나? 수의사는 또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나?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원헬스"라는 개념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생태계를 위한 아주 이상적인 시스템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럴듯한 "협력" 체계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떠도는 관념이 되지 않고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생동감 있게 작동하는 무기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에 발생한 사건을 "원헬스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거기에서 내 나름대로 해법을 한 번 찾아보고자 한다.


지난 2023년 7월 말 서울시 한 동물보호소에서 고양이 38마리가 집단 폐사하였고 폐사한 고양이 2마리에서 H5N1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이하 "HPAI"라 하겠다)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닭이나 오리 같은 조류가 아니라 고양이에서 HPAI가 발생한 데다 고양이가 집단 폐사한 사례는 전 세계를 놓고 봐도 겨우 두 번째 사례였기 때문에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었다.


조사 결과 보호소에서 급여한 오리로 만든 사료에서 동일한 H5N1 AI 바이러스가 확인되었고, 제조업체에서 AI 바이러스에 감염(또는 오염)된 원료에 대한 멸균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않아 해당 사료에 바이러스가 남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고양이에서 추가 발생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고 상황이 종결되었다. 그러나, HPAI는 사람도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게다가 H5N1 타입의 AI 바이러스는 굉장히 많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이다.


만에 하나 보호소에서 다수의 고양이가 H5N1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집단 폐사하지 않고 가벼운 감기 증상만 가진 채로 사람에게 입양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보호자는 좁은 집 안에서 고양이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감염되었을 수 있다.


이 사건의 과정을 처음부터 따라가 보면, 먼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철새가 우리나라에 와서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분뇨를 몸 밖으로 배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의 어떠한 경로를 통해 농장 오리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그 오리는 운 좋게도(?) AI 감염이 발견되지 않고 도축되어 그 사료를 만드는 업체에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업체는 바이러스가 여전히 살아있는 사료를 만들어 공급함으로써 고양이가 감염되도록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 보면 이해가 되지만 과연 야생 철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환경부 공무원이 그 철새가 싸놓고 간 똥으로 인해 (확률은 매우 낮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리의 AI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 수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AI 바이러스를 가진 오리가 그냥 출하되었다고 해서 고양이를 통해 사람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수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원헬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일하는 책임자들이 자신이 하는 역할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일의 결과에 따라 나중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먼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가운데 들어가 있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실행에 옮기는 것부터가 "원헬스"의 시작이다.


AI 방역을 하는 공무원 수의사가 감염된 오리를 잡아냈다면 그 오리가 사료의 원료로 쓰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놓쳤다 하더라도 사료 제조업체에서 확실히 바이러스를 사멸시켰다면 고양이가 감염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틀어졌을 때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보다 더 책임감을 갖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야생 철새의 똥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까지 여러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전체의 과정을 다 알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고 이 흐름을 정리하여 각 과정의 사람들에게 알려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동물과 바이러스와 질병의 발생과 전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수의사가 이 일의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또한, 야생동물, 환경, 축산, 동물방역, 사료, 반려동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일에 대해 알리고, 서로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각 분야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의 차이를 조율하고 절충하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정한 협력은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끈끈하게 형성된 "멤버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함께 모여 스킨십을 갖는 것은 동일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공적인 "원헬스"를 위해서는 수의사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원헬스적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전 세계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단지 동물로부터 온 신종 전염병에 걸릴 위험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만이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다.


지구가 아프면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아프다. 지구가 죽어가면 우리도 죽어가는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서로 도와야 한다. 지금 조금 불편한 것으로 나와 내 다음 세대에게 미래를 물려줄 수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기꺼이" "당장" 해야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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