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 일을 생각하다 7편
오늘도 아이는 학교로, 나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으로 출근해 노트북을 켠다. 정작 수의사로서 일할 때는 별로 보지도 않던 수의 관련 뉴스를 휴직 중에 더 챙겨본다.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은 “소통하는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사이트에 접속하여 기사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 수의사, 임상수의사보다 직무스트레스 높다”
‘최근 가축 방역업무가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공무원인데…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임상수의사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일반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궁금증이 샘솟아 재빠르게 기사 제목을 클릭한다.
읽어보니 15년 차 임상수의사 한 분이 우리나라 수의사의 직무스트레스를 직군별로 비교·연구한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는 기사이다. 연구는 총 234명의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수의사를 대상으로 직무스트레스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실시했다고 한다.
해당 연구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의사는 일반 국민들이 받는 수준보다 상당히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직군별로는 비임상수의사가 임상수의사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데, 비임상수의사 중에서도 특히 공무원 수의사의 직무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수의사의 직무스트레스 지수를 형성하는 8가지 요인 중 4가지 요인, 곧 ‘직무자율성 결여’, ‘보상부적절’, ‘직장문화’, ‘조직체계’에 있어 공무원 수의사가 임상수의사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논문을 읽어보니 카카오톡과 SNS 메시지를 통해 전국의 수의사들에게 설문을 보내서 결과를 취합했다고 하는데, 나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이런 설문조사에 응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고 놀랍게도 내가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은 주된 원인과 연구자가 조사와 분석을 통해 알아낸 “공무원 수의사가 임상수의사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도록 하는 네 가지 요인”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연구 결과만을 놓고 공무원 수의사가 임상수의사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수치화하여 비교하였지만 공무원수의사와 임상수의사의 업무 및 환경은 너무 다르다. 게다가 동일한 사람이 느끼는 두 업무의 차이를 비교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양쪽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은 공무원보다 임상수의사가 더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주관적인 생각일 뿐 객관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기사의 댓글 중에는 ‘스트레스에 예민한 사람이 공무원 하겠죠’라는 글도 보인다. 이 짧은 말에 담긴 의미는 '공무원을 하고 있는 수의사가 스트레스를 더 잘 받는 예민한 성격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말'이리라.
그러나 이것 역시 근거 없는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수의사들이 임상수의사들보다 확실히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인 것은 맞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스트레스를 더 잘 받는 예민한 성격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이것이 단지 공무원 수의사의 성격 유형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 시대상을 잘 반영한 결과인 것 같다(논문은 2023년 8월에 공표되었다). 공무원수의사의 스트레스 지수를 상대적으로 높게 만드는 4가지 요인은 최근 공무원 인기의 하락 요인과 동일하다.
연공서열에 따른 상하관계로 인해 상사의 명령에 아랫 직원은 그저 ‘네 알겠습니다’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일명 “꼰대문화”로 일컫는 공무원 조직문화는 MZ세대 공무원들의 탈출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자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떨어지게 만든 주된 요인이다.
또한, 공무원은 2~3년마다 새로운 곳에서 낯선 업무를 배워나가야 한다. 그럴듯한 업무분장표가 있으나 실제 일을 못하고 안 하려는 사람은 일을 "덜"하고 있다. 그리고 세분화된 각 팀들은 경계가 애매한 일은 어떻게든 튕겨내려고 야단이며, 전공이나 직렬과 무관한 일도 조직을 위해 맡겨지면 해야 한다. 잘 짜인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나있고 일부는 엉성하고 조금만 힘을 주면 끊어질 것처럼 약한 부분도 많은 것이 바로 공무원의 "조직 체계"이다.
주도적이고 소신 있게 실무를 처리해야 하는 담당 주무관의 문장은 팀장, 과장, 국장, 그리고 그 이상을 거쳐 올라가며 계속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담당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모두가 말하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담당자는 힘이 없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현재 공무원이 "직무자율성"을 갖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보상부적절“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군 대체복무를 포함해서 14년을 공무원으로 일한 내 급여는 3년 차 소동물 임상수의사가 받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액수는 인터넷에서 “공무원 봉급표”라고 치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논할 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월급날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면 마음이 누그러진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없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10년 뒤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다시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면 "조직문화"와 "직무자율성"은 많이 바뀌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특히, 수의조직의 특성상 나이와 직장 근무연수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직급에 따라 상하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타 직렬에 비해 수평적인 편이다.
게다가 10년 뒤면 소위 꼰대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퇴직한 후일 것이고,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결과보다는 과정과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가 공무원 조직의 대부분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 항목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훨씬 적은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조직체계"와 "급여"는 법과 조례 등 규정에 따라 정해진 확실한 틀이 있고 형평성 차원에서 수의직 공무원에게만 특별히 예외를 두기 쉽지 않기 때문에 큰 변화는 일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지금보다 임상수의사와의 급여 수준의 격차가 더 벌어져서 공무원 수의사의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본다.
위 연구 결과는 구체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해 수치로 잘 정리한 증거물을 하나 더 얻었을 뿐 사실 대한민국 수의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대한수의사회나 공무원 수의사들은 직급 상향과 수당 인상 등 "적절한 보상"으로 공무원 수의사들의 스트레스를 줄여 공무원으로 일하고자 하는 수의사를 더 이상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10년간 이 주장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연금까지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니 수의사의 공무원 이탈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요, 미래가 될 것 같다.
오늘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허 회장은 방역을 민간으로 이전해야 온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와있지 않아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공무원 수의사가 짊어지고 있는 "방역"이란 무거운 짐을 좀 나눠서 질 수 있다면, 급여 인상과 처우 개선이 되지 않더라도 확실한 워라밸이 보장된다면, 공무원 수의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훨씬 줄지 않을까?
정부는 수의사가 안 온다고 수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수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방법을 만드는 창의적인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동물 방역을 포함한 여러 수의 업무는 전문가인 수의사가 할 수 있도록, 공무원 수의사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