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일맨 Jan 10. 2024

공무원 수의사 그만두고 임상합니다

정확히 11년 5개월.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순식간에 지난 것 같은 공무원 수의사의 삶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작년 여름 휴직과 동시에 글을 쓰며 지난 직장생활을 돌아보았고, 치열한 고민과 흔들림 끝에 안정된 직장을 떠나 새로운 길을 가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023년 12월 14일,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의원면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날부터 이틀 동안 과거 근무했던 사무실 다섯 군데를 역순으로 돌았습니다. 마흔이 넘어 공직에서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기에 만나는 분들 모두 큰 결정했다며, 나가서도 잘할 거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느낌이 좀 이상했습니다. 축하받을 일인가 싶어서입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가는 거니까 축하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고생을 생각하면 축하한다는 말에 감사하다고 답하기 좀 어려웠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전염병 발생 때 말고는 절대 출근할 일이 없는 공휴일인 1월 1일부터 새 일터에 나갔습니다. 근무시간도 1시간이 늘었습니다. 10시부터 8시까지 일합니다. 수의사 8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소동물(개와 고양이) 동물병원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배움의 길, 막막한 임상수의사의 길로 떠나야 하니 두렵습니다. 이젠 이름표가 붙어있는 내 책상도 없고 나만 쓰는 컴퓨터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수의사로서 어리바리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순간들이 여럿 닥쳐올 것입니다.


또한 저기 밑바닥 막내 수의사이니 저보다 나이는 많지 않을지라도 임상에 있어서는 확실히 선배인 수의사들의 질책과 잔소리를 감내해야 하는 시간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론 풋내기 수의사보다 훨씬 노련한 테크니션 샘들의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선택에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한 이 길에 고난이 있을지라도 기꺼이 견디며 즐겁게 이 길을 헤쳐나갈 것입니다. 14년 넘게 경험한 사회생활을 거울삼아 잠시의 어려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웃을 날이 올 거라는 걸 믿고 꿋꿋하게 밀고 나갈 것입니다.


두려움과 그에 상반된 설렘이 제 안에 있습니다. 과거 지레 겁먹고 도전조차 해보지 않았던 임상의 길에 과감히 뛰어들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하루하루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두근두근 가슴이 뜁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도 있겠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생한 만큼, 애쓴 만큼 고스란히 저의 실력으로 남을 것이란 걸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집중해서 습득할 것입니다.


퇴근 이후 단 한 시간이라도 공부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입니다. 또한, 쉬는 날에는 짐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향할 것입니다. 아직은 초보 수의사이지만 매일매일 더 나아지는 수의사, 그리고 아픈 동물과 보호자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실력 있는 수의사가 "결국" 될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